글쓰기 열풍이 아니라 광풍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든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빠지지 않고, 늘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엄마.입니다.
평소에는 글쓰기에는 전혀 관심 없던 사람들이 엄마가 되고 나면 왜 갑자기 글이라는 걸 쓰고 싶어 질까요? 엄마는 할 얘기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되고 나면 우선 관계가 확장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자 한 남자였던 남편은 ‘아빠’라는 새로운 이름의 역할을 가진 사람이 되죠. 그동안 분명히 알고 지내던 사람인데, 이 남자를 바라보는 내 눈이 달라집니다. 새롭게 보게 되는 사람들은 또 있습니다. 그저 나의 부모님이었던 친정 부모님도 ‘엄마’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서 예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어떤 것들은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또 어떤 것들은 오히려 원망하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아예 없던 새로운 사람들은 또 어떤가요. 아이를 중심으로 해서 생겨나는 주변 사람들의 관계는, 어째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이가 좋아해서 만나야 하는 친구의 엄마, 혹시나 중요한 정보를 놓치진 않을까 싶어서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되는 학부모 모임 등, 새롭게 생겨나는 관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고 그로 인해, 생각이 많아지게 되는 거죠.
엄마는 또 걱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평소라면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스쳐 지나갔을 뉴스에 관심이 가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갑자기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가서 텀블러를, 면생리대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학교 폭력이며 아동학대, 남녀차별 등의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고 ‘유모차 부대’가 생겨나는 것 역시 엄마가 되고 나서 생긴 변화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아지고, 그로 인한 생각들을 글로 써서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싶어 집니다.
세 번째. 엄마는 외롭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엄마는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지만, 정작 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너무 어리고, 남편이라는 작자는 너무도 공사가 다망하셔서 아내의 이야기나 고민을 들어줄 여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밖으로 나가면 또 어떨까요? 마음 맞는 동네 엄마들을 만나서 얘기하는 순간은 물론 즐겁습니다. 웃느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헤어짐이 아쉽기도 하지만, 이상하죠. 집으로 돌아오면서 왠지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다이어트 얘기로 시작해서 시댁 흉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어떤 엄마의 뒷담화에 맞장구를 치다가 다시 드라마 얘기 찍고, 어떤 연예인의 얘기에 ‘어머,어머. 진짜?’를 연발하다가 다시 다이어트 얘기로 끝나는 그 만남은 진짜 외로움을 달래주지는 않습니다. 깊이 없는 만남이 더해질수록 엄마는 진짜 얘기라는 게 하고 싶어 집니다.
네 번째. 사실 엄마는 주인공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요?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의 주인공이 ‘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세상의 진리는 천동설과 지동설의 차이만큼이나 달라지고 맙니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이, 갑자기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그 간극은 심하게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엄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거죠. 나는 과연 젖소인가. 인간인가. 그 질문은 아이가 자라면서 수시로 형태를 바꿔가며 엄마인 나를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들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무언가 하게 됩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막상 사지도 않을 옷을 눈이 빠지도록 찾아보다 잠드는 숱한 밤들 역시, 엄마도 사실은 ‘나’를 위해 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본 많은 엄마들의 글에서는 그 마음이 보였습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그 마음 저편에는 어린 시절 상처 받았던 자신의 이야기가 숨어 있고, 사랑스러운 아이 이야기 속에는 아이를 잘 키워낸 내 애씀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들을 애써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글을 통해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