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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열다 길을 잃다

나의 사랑은 늘 거기에

by 김희숙 라라조이

부엌에서 부지런히 걸어와서 방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안경을 찾아 쓰고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의 패턴을 그린다. 카톡 알람이 떠 있다. 문자 알람도 떠 있고. 연다. 이런, 못 본 단체 카톡 대화가 길다. 늦게라도 나도 몇 마디 거든다. 문자도 와 있다. 택배 상품이 오늘 중 배송 예정이란다. 얼른 '현관 앞에 놓아주세요.'라고 답문자를 보낸다. 그리고는 네이버 뉴스를 연다. 세상의 복잡하고 답답하고 지루한 이야기들이 잔뜩이다. 퍼뜩, 정신이 든다. 나 무언가를 찾아보러 방에 들어왔는데! 핸드폰으로 뭘 찾아보려고 했었지?


이렇게 난 자주 핸드폰을 열다 길을 잃는다. 그리고는 천진난만하고도 태평하게 이곳저곳을 헤매며 해맑게 딴짓을 하고 있다. 그래도 뭔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원래 하려고 했던 것을 조금 나중에 기억해내고 그 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 혼자 헛웃음을 웃고 있다.


살면서도 늘 직진으로 가지는 않는다. 딴 길로 가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기도 하고, 일부러 옆길로 새기도 하고, 골목길 탐험을 하다가 가곤 한다. 결국 그곳에 가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차라리 잘 된 것인지 아니면 망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살다가 길을 잃을 때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가, 한참을 울고 앉았다가, 오래 오랜 후에 천천히 일어나서 다시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서도 인생길은 잘만 흘러갔다. 원래 정해진 길이었던 건지 아니면 잘못 들어섰다가도 또 다른 길을 찾아서 물길이 트이듯 그쪽으로 흘러갔던 건지. 그저 나는 계속 걷기만 하면 되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걷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된다. 길은 길로 이어지니까.


길을 잃는다는 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이던가. 그것도 매번 가던 길을 잃는다는 건. 엄마가 복잡한 지하철 환승역에서 나오고 또다시 들어가고, 다른 쪽으로 나오다가 또다시 들어가고 진이 빠져 헤매고 있을 때 고마운 청년이 나타나 전화를 걸어 우리에게 연락을 주었엇다. 엄마의 그 첫 당황스러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싸'하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와서는 들어갈 때 늘 외우던 현관문 비밀번호 네 자리 숫자를 멍하니 못 누르고 자신의 집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던 엄마. 경비실의 도움으로 열쇠집에 연락을 하여 열고 들어갔던 집 안에서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엄마는 남편이 가고, 아들도 먼저 가고 길을 잃었다. 내가 거기서 딱 서있었어야 했는데. 그 골목길에서 어디 못 가게 딱 서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을까?

핸드폰을 열다 길을 잃다.

인생길을 걷다 길을 잃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 길을 잃다.


길을 잃는 것은 사소하거나 슬프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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