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행성이다. 어두워지면 해롱거리던 눈빛이 반짝 빛이 난다. 주로 저녁 9시 즈음?
어릴 때 일찍 잠자리에 드는 걸 좋아했다. 그리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떠올리며 그 안의 여주인공 몸에다 목 위 얼굴 부분만 내 얼굴로 교체하여 상상하는 걸 즐겼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내용 부분은 내 맘대로 각색하여 돌리고,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한없이 천천히 슬로비디오로 돌려가며 몇 번씩이나 리플레이하곤 했다. 그 안에서 내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상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자야지.' 하고 맘만 먹으면 어느 틈엔가 모르게 잠에 빠질 때인데도, 자기 전의 그 상상의 시간은 나에게 중요한 의식처럼 천천히 오래오래 성스럽게 진행되었었다. 나이 들기 전까지 나의 자랑은 어디 며칠 놀러 가면 하루 이틀은 그냥 한 잠도 안 자고 놀 수 있다는 거였다. 또한 맘만 먹으면 언제든 금방 잠을 잘 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양하게 경험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보다 많이 하고 살려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을 잠을 덜 자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버티기만 할 수 있다면 인생에서 쏠쏠하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잠을 잘 못 잔다. 잠이 들기도 어렵지만, 잠이 들고난 후에도 잠의 질이 좋지 않다. 심지어는 새벽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깨어나는 적도 있고, 늦게 잠이 들었는데도 일찍 눈이 떠져 억울해하기도 한다. 예전에 나는 몸이 안 좋아도 잠만 하루 푹 자고 나면 개운해지는 사람이라고 자만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면이 사람의 건강에 그렇게 중요하다니. 그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자고 충분히 잘 걸.'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충분히 자려고 노력한다. 근데 별 영향도 없던 커피가 어쩌다 발동이 걸리면 잠하고 줄다리기를 하는지 자는 건지 깨는 건지 오락가락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어차피 잠이 오지 않을 거니까 유튜브를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소개를 해주는 유튜브를 만났다. 늘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어릴 때의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해준 것처럼 누군가 나에게 책을 읽어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사람이 나타났다. 남자다. 목소리가 명쾌하고 좋다. 말의 빠르기도 답답하지 않고 시원시원 하니 맘에 든다. 그리고 날마다 새로운 주제로 신선함을 주고, 몰랐던 세계로 데려다주는 묘한 마성을 지녔다. 듣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그의 얼굴은 볼 수가 없다. 책을 넘기는 손이 가끔 눈에 들어올 뿐이다. 분명 젊은 남자일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자신이 소개하는 책을 두 권 샀다고 하며 군대 간 아들에게 한 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헉,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나? 충격, 아니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충격인가, 이러는 내가 혼자 생각해도 우습다. 그래도 나는 배신하지 않고 그 남자와 매일 함께 잠든다. 어쨌든 잠이 잘 온다. 아침이면 듣다 만 책 소개 유튜브가 지난밤 허무하게 끝나버린 옛사랑처럼 내 핸드폰에 새겨져 있을 뿐이다.
나도 누군가가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해주거나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던 그 순간처럼 완벽하게 편안하고 포근하던 그 마주함이 우리를 싱그럽게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책 읽어주는 어플이나 유투브가 아니어도 꿀잠을 잘 수 있도록 이 세상을 향해 ‘옛날 옛적에…….’하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너여도 되고 나여도 된다. 서로 마주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따듯한 목소리로 속삭이자.
“옛날 옛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