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굿바이!"
나는 그즈음에 내가 해결사인 줄 알았다. 판단은 빠르고 정확하게 해야 했다. 실행은 신속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했다. 나에겐 더 이상의 기회가 없었다.
국어교사로 지낸 33년을 며칠 사이에 마무리 짓고 있었다.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암을 수술하기로 날짜를 잡아 놓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마침 명퇴 신청 기간이 다가와 서류를 준비해 놓고 제출을 부탁했다. 나의 암에 대해 공부해야 했고, 수술과 치료에 대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했고, 나의 보험과 보장내역들을 확인했고, 업무를 인수인계했고, 마무리를 위해선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잘하고 싶었다.
교사로 지낸 시간들에 아이들은 예뻤고 나는 즐거웠다. 대부분은. 마지막 시간에 들어가서 아이들의 눈을 꼭꼭 눌러 쳐다보며 인사를 했다. 늘 명랑한 나는 짧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그 아이들이 정말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나오며 말했다.
"괜찮아."
하지만 정작 괜찮지 않은 것은 짐 정리였다. 이 학교 저 학교로 전근을 가면서도 끌고 다닌 잡다한 것들과 책들과 자료들 아이들의 흔적들... 그동안 집에서는 미니멀리즘이라고 버리고 버리고 나누고 보내고 했었는데, 직장의 사무용 장에는 오랜 기간 동안의 흔적들이 소화가 안 되도록 그득했다. 나는 그것들을 사람들이 모두 퇴근하고 없는 시간에 정리하느라고 며칠을 텅 빈 교무실에 늦도록 있었다. 집으로 가져갈 것들을 조금 챙기고는 엄청난 양을 거의 버려야 했다. 결국 많은 것들은 마음과 기억에만 남는 것이었는데.
그 후 나는 괜찮았고, 아이들에게 다시 생생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러 갔다. 수술과 항암을 후딱 해치우고 나서 갑자기 내 앞에 주어진 시간들을 벅차게 바라보다가 일어서서 '내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인가? 직장을 다니고 가족이 생기고 그 안에서 소용돌이쳤던 세월이 끝나고 오롯한 나 자신만의 삶으로 독립선언을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의 독립선언서와 함께 신나게 펼쳐지는 '내가 재미있는 시간'에 대해 쓰려고 한다.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던 날, 모든 물건을 정리하고, 책상을 깨끗이 닦은 후, 불을 끄고 교무실 문을 나섰다.
"마지막 퇴근이야. 가자! "
그리곤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로 첫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