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이 내게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쿠쿠입니다. 음성 가이드로 더욱 편리하게 쿠쿠 하세요." (선전이 아니다. 우리 집 밥솥일 뿐)
이렇게 자신의 이름까지 대면서. 나는 단지 코드를 꽂았을 뿐인데. 그러면 나는 "네에."하고 곱게 대답한다. 그리곤 안에 있는 내솥을 꺼내서 그 안에 현미를 담고 찰현미를 담고 검은콩을 담고 때론 검은 쌀과 병아리콩 등을 넣고 찬물에 씻어준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주부로서 하는 가장 성스러운 의식일지도 모른다.
쌀을 씻어 밥을 할 때면 그 누구도 아니고 내 가족을 생각한다. 누구는 현미를 좋아하고 누구는 병아리콩을 좋아하고 누구는 검은콩이 혹시나 머리를 더 검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밥을 더 꼭꼭 씹어먹겠지. 물은 언제나 과학적으로 계량하지 않고 어렸을 적 비법처럼 배운, 쌀 위로 손바닥을 살포시 펴 올려놓고 손등에 살짝 물이 올라오는 정도로 가늠한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러겠지.
대강하는 게 언제나 좋다. 언제는 좀 꼬들꼬들한 밥이 되고 언제는 좀 질게도 된다. 우리 사는 것도 때론 일이 잘 풀리며 기분이 좋기도 하고 때론 아무 이유 없이 꼬이고 기분이 나쁘기도 한 것처럼. 의외성이 없는 삶은 재미없으니까.
다 씻은 쌀이 담긴 내솥을 본체에 넣고 버튼을 누른다. 가족들이 저녁을 먹을 시간에 맞춰 예약을 한다. 이런 때면 나는 굉장히 위대한 일을 해낸 것처럼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아니면 준비가 늦었을 때는 즉각 취사를 선택한다. 이런 때면 나는 더 신속하고 단호하다. 그러면 또 밥솥은 내가 선택한 종목과 과정을 다시 정확히 확인하며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말을 한다.
"잡곡, 쿠쿠가 맛있는 취사를 시작합니다."
그리곤 끝에 자신도 이제부터 즐겁게 일을 시작한다는 듯 휘파람 소리 같은 음악소리를 낸다. 매번 들으면서도 그때마다 나는 '풋' 하고 웃는다. 내 큰 임무가 끝난 것 같은 여유로움으로. 그리고 밥솥이 열심히 일을 하는 동안 난 한결 안심이 되는 마음으로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또는 그 따끈한 밥과 같이 먹을 반찬을 만들기도 한다.
밥이 다 되기 전에는 몇 분 전부터 안내를 해준다. "뜸 들이기를 시작합니다." 하고 친절하게. 빨리 밥을 먹어야 할 때는 몇 분 남았는지 밥솥이 온몸으로 표시해주는 문자언어를 스캔한다. "밥이 다 되었으니 골고루 섞어 주세요." 이 멘트가 나오면 이제 밥을 먹어도 되는 거다. 하지만 조금 더 뜸이 들게 놔둔다. 그때 배고픈 남편이 성급하게 밥솥을 열면 속으로 급한 성격을 흉본다. 밥솥을 열면 까만 콩들이 위로 올라와 가운데로 모여 있는 게 귀엽다. '모든 것들을 골고루 섞어주지.' 하고 주걱으로 곱게 섞는다.
이 매뉴얼대로 우리들 삶도 안내를 해준다면 훨씬 시행착오가 적을까? 삶은 언제 끝나는지 "이제 얼마 남았습니다."하고 안내를 해 줄 수는 없을까? 그러면 삶이 완성되는 날에는 콩이 예쁘게 올라온 밥처럼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밥을 하고 살 거라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밥도 한 번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자마자 마치 자동인형처럼 밥을 해대기 시작했다. 원래 나의 임무였던 것처럼. 부부가 똑같이 직장을 다니면서도 아이들이 태어나자 모성애의 표현인 것처럼 더 미친 듯이 밥을 해 먹였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한 번도 여자가 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러면서도 이렇게 해 온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한 서비스였어."
그리고 선언했다.
"나 밥 안 할래!"
각자 스스로 자기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지듯이 자기 밥은 자기가 해결하라고. 아이들은 커서 스스로도 잘 해결했고 엄마에게 어떤 부담감도 주지 않았다. 엄마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하라고. 그러나 당황한 남편만이 여러 차례의 대화 끝에 자신의 밥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졌다. 이제 나는 밥이 하기 싫을 때 밥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여행을 가거나, 피곤하거나. 하는 짓이 미울 때나, 그냥 밥이 하기 싫을 때 밥을 하지 않는다. 그럴 때 스스로 맘 한구석이 켕기지 않도록 연습한다. 유난히 피곤해서 직장에서 돌아오던 날, 퇴근하며 장을 보고, 집에 오자마자 바쁘게 밥을 해서 가족을 먹이고, 치우고 지쳐서 밤에 울던 젊은 날의 나를 토닥이면서 '이제 그래도 괜찮다.'라고 말해준다.
딸이 프라이팬에 달걀이나 고기를 굽고 있으면 옆에서 나는 샐러드를 만들고 있다. 내가 국을 끓이면 남편은 그걸 퍼서 상에 나르고 맛있게 먹고 나서는 설거지를 한다. 남편은 종종 토마토 스파게티를 만들고 우리는 그걸 먹는다. 서로에게 요구하지 않고 모두가 밥을 함께 한다. 그리고 밥에서 벗어난 나는 내 삶에 더 집중한다. 되도록이면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려 노력한다. 그 안에서 내 모습이 더 잘 보인다.
이런 기본 룰을 가지고 나는 종종 가족에 대한 마음이 꿈틀거려 서비스로 밥을 한다. 그런 인식이 사라지지 않게 주의하면서. 설령 그 이전처럼 밥을 계속한다 해도 나는 이제 밥을 해줘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요즈음 밥솥의 소리를 아주 드물게 듣는다.
그래서 오늘따라 밥솥의 목소리가 반갑다. 만남이 뜸해진 지인의 오랜만의 전화 목소리처럼.
"안녕하세요? 쿠쿠입니다."
나는 대답한다.
"안녕하세요. 밥을 해서 행복한 사람이고, 밥을 안 해서 행복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