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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도 할래. 그거 재밌잖아.

나는 지금 재밌어

by 김희숙 라라조이

나는 무엇이든 하는 걸 좋아한다.

사랑, 도전, 체험, 까불기, 배우기, 스포츠, 게으름 피우기, 노래하고 춤추기, 좋은 사람과 수다 떨기, 나무와 꽃들 보며 바람을 맞으며 세상을 걸어 다니기...


십 년 전쯤 직장에서 '미래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는 주제로 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지금부터 십 년 동안 탐색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면 충분히 될 줄 알았다. 오 마이 갓! 그 후 7년 동안에도 준비하지 못했고, 퇴직한 몇 년 동안도 찾지 못했다. 나는 시간이 가면 될 줄 알았는데... 구시렁구시렁...


그래서 일단 놀기로 했다. 제일 먼저 신나게 놀아본다. 내가 재미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인생에 남는 장사인 것 같아 놀았고 계속 놀거리를 찾는다.


기억에 남는 재미있었던 것들


캐니어닝 - 필리핀 산 위부터 구명조끼와 헬멧만 착용하고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레포츠. 물에 둥둥 떠가다, 얕은 물을 걷고, 다양한 높이의 바위나 절벽에서 점프로 다이빙하고 4시간 동안 내려온다. 처음엔 20분쯤 하는 줄 알았다. 중간에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산 위로 도망쳐 갈 길이 없었다. 두려움이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포기가 되고 즐기다 보니 내가 물고기인 줄 착각하게 되었다. 물 위를 누워서 지나가며 보았던 하늘을 뒤덮은 원시 밀림 같은 풍경은 나의 태초를 기억하게 하는 듯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난 수영 못 한다. 그저 구명조끼만 믿었을 뿐. 조끼 고맙다.


고래상어와 헤엄치기 - 아침이면 자연보호구역의 고래상어가 먹이를 먹으러 해변으로 온다. 그때 우리는 배를 타고 나가서 물속에 들어가 고래상어와 지느러미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황홀한 수영을 하게 된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썬크림도 어떤 해를 끼칠 것도 하지 않고 만나러 간다. 그 순한 표정과 움직임. 물지 않는다. 아름답다. 물속에서의 조용한 평화가 물결쳐 내 온몸에 울린다. 스노클링과 스킨스쿠버로 보았던 산호와 거북이, 아름다운 물고기들, 청어 떼들도 인생 풍경이다.


방 탈출 -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었다. 방 탈출이란 곳이 생긴 이후 나는 호기심이 솟아났다. 직장 동료였던 젊은 브레인 두 명을 꼬셔 들어갔다. 쫄깃거림이 시시각각 조여 오는 공포스러운 방도 있었으나 무난한 추리의 방을 선택했다. 첫 번째 방의 첫 문제를 내가 풀었다. 입문 코스로 쉬운 문제였나 보다. 그 후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았으나 대부분 젊은 브레인들이 눈부셨다. 여러 개의 방을 수많은 추리와 암호를 해석해 열쇠를 찾고 탈출하면 그다음 방이 나타나서 해결해야 하는 쉽게 끝나지 않는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우리의 삶도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그다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방 탈출과 비슷하다.


전동 킥보드 타기 - 젊은 사람들이 킥보드를 타고 '새앵'하고 지나갈 때면 참 편리하고 신나겠다 생각했었다. 딸과 만나기로 한 연남동에 딸은 킥보드를 타고 나타났다. 어릴 때 스케이트도 타고, 롤러블레이드도 타고 자전거도 타고 놀았는데 '이까짓 꺼!'하고 나도 잠깐 타 봤다. 오! 되살아나는 운동신경! 그때 잠깐 타 본 경험으로 코로나가 퍼지기 바로 전에 다녀왔던 인도, 포르투갈 여행에서 리스본의 테주 강변을 바람을 맞으며 싱싱 달렸다. 그때 그 모습이 분명 너무 멋있었을 것 같았는데 그날은 혼자 여행 중이어서 사진을 못 남겼다. 내가 탔다. 그것으로 되었다.


몇십 년 만에 다시 타 본 스키, 뼈 부러질까 주저하다 기회를 놓치면 평생 다시 못 탈까 봐 살살 탔다. 기특하게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단지 꼬리뼈를 헌납했지만 후회 없다. 그리고 산 위에서부터 레이싱으로 내려오는 루지도 신이 났다. 지난여름엔 남편과 둘이서 워터파크에 가서 코로나로 사람이 유난히 적던 놀이기구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탔다. 그 구역의 최고령자 커플이었다. 패키지로 끊어서 이 체험들이 무료였으니 무조건 했다. 나중엔 토할 것 같았다. VR 체험도 재밌었다. 그리고 오로지 내가 쥔 고삐만으로 말과 교감하며 달리는 승마도 제주도의 자연풍경과 더불어 아름답게 기억되었다. 물론 맨 앞에 길잡이 말이 있었으나 종종 말을 듣지 않는 말들도 있어 긴장감이 높았다. 쫄깃! 풍경은 폭풍의 언덕이었다. 세상에, 재밌는 것들이 많이 있네.


이번 여름이 되면 춘천에 가서 파크골프를 치고, 강에서 하는 레포츠를 할 계획이다. 살살할 거다.


죽을 때까지 재미있는 일들을 찾으며 살고 싶다. 어릴 때부터 줄곧 재미를 찾아다녔고 재밌었다. 사실 재미있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가 하는 일들에 신나게 하는 것이 재미있는 것이었다. 함께 앉아서 밥을 먹는 사람과 대화하며 웃는 것, 일을 할 때 의미를 생각하며 좋은 감정으로 하는 것, 어디를 갈 때 그곳에서의 장면을 기대하며 신이 나서 통통 뛰어가는 것, 우울할 때 거울보고 씨익 웃는 것, 한강을 달리는 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 소리 지르는 것 등등.


그냥 살아있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 인생이 얼마나 예측불허의 쫄깃한 방 탈출인가! '추리소설 저리 가라'다. 무엇이 나타날지 모르는 내일이다. 기대된다. '내일 재미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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