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의 봄은 여름에 시작된다.

8월 말의 벚나무를 보며.

by 지금은 함박꽃

올해도 더위는 일찍 시작되어 사월이 채 지나기 전에 반팔 옷을 꺼내 입었다. 하지만 일찍 시작된 더위는 맹렬히 덥혀지지 않았다. 유월이 시작되면서 때 이른 장마가 오고 팔월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이불 빨래해서 눈부신 베란다에 널고 햇살 향 가득 품은 이불을 고슬고슬한 맛에 안고 잤는데 그 소소한 행복마저 누리지 못했다. 이불 빨래는커녕 옷마저 마르지 않아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우리네 사람도 살기 힘들었지만 하늘만 바라보며 땅에 뿌리박고 지내는 벼, 사과나무, 배롱나무, 노란 달맞이꽃도 걱정이 되었다. 여름을 보내며 강렬한 햇빛과 햇볕을 듬뿍 받아야 토실토실 열매를 맺고 씨앗도 영글게 하여 한해살이에 대한 보람이 있을 터인데 제대로 한해살이를 보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팔월 십오일이 지나서야 지루하게 이어지던 장마가 끝나고 며칠 동안 강렬한 햇살이 이어졌다. 백신도 약도 없는 신종바이러스와 이상기후 현상에 뒤죽박죽 어수선하게 보낸 시간이었지만 기특하게도 나무와 풀꽃은 제때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어 주었다.

나의 일터로 오가는 길에는 벚나무가 죽 줄지어 서 있고, 그 밑으로 조팝나무가 옹기종기 사이좋게 앉아있다. 팔월의 늦장마가 끝나고 해님이 강렬한 위용을 뽐내나 싶던 며칠이 지났다. 푸른 나뭇잎을 무성하게 매달고 늠름하게 서 있던 벚꽃 나무에서 노란 잎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햇살이 많이 기울어지긴 했지만 아직은 팔월인데, 제대로 여름의 햇살을 담아보지도 못했을 벚나무의 잎이 노랗게 변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떨어진 잎, 낙엽. 팔월에 만나는 낙엽이 낯설게 느껴졌다. 벚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일찍 잎을 떨어뜨린다고 숲해설가로부터 설명을 들은 뒤라 노란 나뭇잎이 더 눈에 들어왔으리라. 벚꽃길을 거의 매일 지나다시피 한 지 삼 년째인데 두 해 동안 보이지 않았던 팔월의 노란 낙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마음이 쓰였다.


사월 말에 시작하여 오월 초까지 연하디 연한 연분홍 벚꽃과 초록빛 머금은 하얀 조팝꽃이 어울려 피어, 그 길을 지날 때는 마치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글귀의 꽃길을 걷고 있는 즐거운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오늘도 꽃길 같은 하루가 펼쳐질 거라는 주문을 걸면서 말이다.

그렇게 즐거움을 주던 벚꽃과 조팝나무 꽃은 짧은 시간 반짝이다가 어느 비가 내린 밤에 우수수 꽃잎을 떨구고 헤싱헤싱해졌다. 그러고는 그런 고운 꽃은 피운 적도 없다는 듯 진초록 평범한 이파리만 잔뜩 달린 여름 나무가 되어 햇빛을 갈구하며 그렇게 서 있었다.


나무의 잎은 이산화탄소와 물이 만나 햇빛과 받아들임으로써 산소와 당을 만들어 낸 후, 작은 가지와 굵은 줄기를 거쳐 든든한 원뿌리와 자잘한 잔뿌리까지 나무의 구석구석에 힘을 주는 중요한 생산기관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햇볕이 그 힘을 차츰 잃게 되면 잎의 생산 기능은 약화된다. 호흡까지 담당하는 잎은 그때가 되면 생산보다는 소비의 기능이 커져서 전체 나무 입장에서 적자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대기가 더욱 건조해지는 계절이 되면 한 호흡 한 호흡 수분을 내뱉기조차 아까울 것이다. 더구나 날씨가 더 추워지면 수분을 가장 많이 포함하고 있는 잎부터 동상을 입게 되므로 더 추워지기 전에 모진 맘을 먹고 떨켜를 만들어 떨어뜨리게 된다.


이제 여름이 지나고 더위도 가시어 선선한 가을을 맞이한다는 처서가 되긴 했지만 논의 벼는 이제야 이삭이 패기 시작했고 다른 나무들은 여전히 왕성한 햇살을 받으려고 푸른빛을 더 반짝이며 지나는 바람을 희롱하고 있는데, 꽃길을 만들어주던 벚나무가 벌써 노란 잎을 떨구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맘이 짠하다. 여름 내내 이어진 장마로 얼마나 마음 졸이는 시간을 보냈을까?


어릴 적 농사일이 시작되어 농수로에 물이 넘실거릴 때, 하늘하늘 엷은 선녀 날개옷 같은 벚꽃이 힘없이 떨어져 뱅글뱅글 돌며 흘러가는 것을 보곤 했다. 학교에서 제일 굵은 기둥 줄기를 가지고, 가지도 넓게 퍼져있어 힘센 천하장사 같았던 교문 옆 벚나무에 그런 힘없는 여린 꽃이 핀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억세 보이는 굵은 줄기에서 여린 꽃잎을 피워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한 송이 두 송이 꽃을 피울 여유가 없을 것이다. 다른 꽃들이 피기 전에 우르르 한꺼번에 꽃을 피워 경쟁력을 갖춰야 하니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리라. 그리하여 고민 끝에 다른 나무들이 아직은 햇빛을 갈구하며 여름의 끝을 붙잡고 푸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려고 할 때 눈 딱 감고 제 살 도려내듯 하나씩 하나씩 그 잎을 떨구어내는 것이리라. 아직 다른 나무들이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내년 봄을 준비하는 것이다. 일찍 제 몸에서 자식 같은 잎을 떨구고, 그 아픔을 내년 봄에 피어날 환한 꽃으로 보답하기 위해 줄기에 가로줄 세기며, 서리 내리는 가을과 삭풍 휘몰아치는 겨울을 이겨내는 것이다.


내년 봄에도 벚꽃 행렬 속에서 ‘오늘도 이 꽃길만 같은 하루가 되게 해 주세요.’ 하며 그 길을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벚꽃 나무 아래서 벚꽃 닮은 미소를 짓는 아이들을 사진에 담을 것이다. 그때 그곳에서 팔월에 떨어뜨렸던 노란 잎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울퉁불퉁 줄기의 가로줄 어루만지며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을 것이다. 매일 허둥대며 발등에 떨어진 일을 처리하기에 바쁘던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해 주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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