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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Apr 03. 2024

“나 다쳤어요.”

 일터에서 더는 몸도 마음도 상하지 않겠다 다짐한 다음 날이었다. 출근한 지 채 30분이 지나지 않아 빈 플라스틱 상자(일터에서는 ‘빵짝’이라고 부름)를 밀어서 옮기다 바닥을 잘못 디뎌 보도블록에 제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누가 볼 새라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매장 앞에서 차를 정차하고 있던 운전자 외에는 사고(?)를 목격한 이가 없는 듯 보였다. 오픈 준비를 하는 동료들은 저마다 자기 일에 바쁜 와중이었다. 바지를 걷어 보니 양쪽 무릎이 모두 까져있었다. 내일이면 아마도 시퍼런 멍이 올라오겠구나, 싶었다.

 벌떡 일어나 상자들을 정리하고 매장에 들어서 업무를 시작했다. 구워져 나온 빵을 포장하고, 충전물을 넣고 도넛에 계피 설탕을 묻히는 내내 까진 무릎이 바지에 닿아 통증이 느껴졌다. 

 한 차례 일 폭탄이 지나간 후 잠시 여유가 찾아왔을 때, 어째서인지 동료들에게 다친 사실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매장에 반창고가 있냐고 물으며 넌지시 방금 일하다 넘어진 이야기를 꺼냈다. 예상한 것처럼 아무도 내가 넘어진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해 놀란 눈치였다. 걱정하고 괜찮은지 묻는 동료의 말을 들으며 상처에 연고와 반창고를 붙이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일터에서 다친 사실을 동료에게 알리는 게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겠지만, 나에겐 이렇듯 고민이 필요한 일이었다. 괜한 일로 수선을 피우거나 엄살을 떠는 것처럼 보일까 봐 툭툭 털고 일어나 조용히 다시 일을 시작하는 쪽이 나에겐 자연스러웠다.

 출근길 복잡한 신도림역에서 지하철 출입구에 새끼손가락이 낀 적이 있었다. 지하철 문이 자동으로 열리지 않아 당황한 나는 힘을 주어 끼인 손가락을 강제로 빼낸 것에 한시름 놓으며 사무실이 위치한 선릉역에 도착할 때까지 아픈 손가락을 꼭 쥐고 있었다.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 PC를 켜고 업무를 시작했다. 자판을 두드리는데 다친 손가락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제야 옆에 앉은 직원에게 출근길 사고를 이야기하니 어서 병원에 다녀오라고 권했다. 바쁜 사무실에서 민폐를 끼친다는 기분에 얼굴이 조금 빨개진 채 팀장에게 이야기하고 근처 정형외과를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손가락뼈가 골절되어 있었고 당일 접합 수술을 하게 되었다. 유선상으로 조퇴 처리를 하고, 때 이른 퇴근길에 오르던 기억이 생생하다. 출퇴근 시간과는 달리 여유로운 지하철에서 환승하고 1호선을 타는 내내 자리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는데 붕대에 감긴 새끼손가락에서 얼얼함이 느껴졌다.

 다음 날 출근을 하니 동료들이 다친 손가락에 대해 궁금해했다. 겨우 새끼손가락이라며, 일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대답했다. 동료들의 각종 골절 경험을 잠깐 공유한 후 평소처럼 업무를 시작했다. 자판을 치는 오른손의 움직임이 조금 어색했지만 금새 익숙해졌다.    

  

 일터에서 다친 일을 알리고 약을 바르는,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나에겐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혼자서 꾹 참지 않고 작은 용기를 내어준 스스로가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오후가 되니 까진 부위는 딱지가 앉기 시작하고 주변에 예상보다 커다란 멍이 올라오고 있었다. 바지를 걷고 상처 부위를 카메라로 찍었다. 

 다음 날 출근길 카풀을 하는 동료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살짝 넘어진 줄 알았다며 깜짝 놀라는 동료를 보니 우습게도 위안이 되었다.      

 앞으로도 일터에서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겠다는 다짐은 유효하다. 거기에 하나 더, 만약 불가피하게 상처를 입으면 꾹 참는 대신 꼭 사람들에게 말해야겠다. 수선을 피우고 엄살을 떠는 일은 의외로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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