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들려준 잊고 있던 낭만
나는 이문세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의 음악 속에는 잊고 지낸 낭만과 묵은 추억이 자리하고, 그리운 향수가 은은히 흩어져 있다. 오늘처럼 마음이 눅진한 날이면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틀어 놓고 글을 쓴다. 아련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내 곁에 조용히 흐른다.
이문세는 슬픈 사랑을 노래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사랑이 다시 하고 싶어 진다. 아픔 속에서도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낭만이 느껴지는 걸까. 그의 노래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사랑의 떨림과 진짜 나의 감정들, 그리고 고요한 그리움을 숨 쉬게 한다.
내 장편소설 피는 솔직하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가 가진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궁금해했다면 우리의 오늘은 어땠을까. 달랐을까, 아니면 여전히 같았을까.
우리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 무게에 눌려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여유를 잃는다. 삶에 쫓기며 몇 번의 고개 끄덕임으로 타인의 사연을 스쳐 지나갈 뿐, 그의 삶에 들어가 보려는 마음은 다음 할 일 속에 묻힌다.
그러나 나는 소설가다. 타인의 이야기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만 내가 만든 세계가 진실로 자리 잡는다. 내가 아닌 인물의 마음이 되어 살아가는 순간, 내 글에 생명이 깃든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야 할 때 이문세의 노래를 듣는다. 그의 음악 속에서 잊고 있던 낭만을 찾는다.
가끔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이 있다.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떠다니지만, 활자로 꺼내는 길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 그럴 때면 음악을 틀어 둔다. 내가 쓰려는 이야기에 가장 가까운 음악을 고른다. 음악이 울리기 시작하면 어느새 손끝이 움직인다. 내 안에서 그려온 이야기를 활자로 세상 밖으로 불러낸다.
나는 음악의 힘을 믿는다. 음악이 없었다면 내가 만든 인물들에 그토록 깊이 빠져들지 못했을 것이고, 그들의 내면을 그렇게 섬세하게 그려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문세의 노래는 내 손끝에 작은 초능력을 쥐어준다.
음악 속에는 낭만과 추억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픔과 슬픔조차 담겨 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살아간다. 비록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일지라도, 그러한 사연들이 쌓여 지금의 우리가 있다. 좋든 싫든, 무겁고 어딘가 어두운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을 낭만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렇게 부르기 시작할 때, 그 낭만이 우리에게 은은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의 지친 마음을 음악이 감싸 안아 주듯, 그런 음악을 들으며 쓴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이문세의 노래를 들으며, 그의 노래가 불러낸 낭만의 힘을 빌리며, 그렇게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