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세연 Nov 15. 2024

떠난 자리, 남은 나

이미 떠나버린 사람의 잔향과 온기, 스치던 손끝의 미묘한 감각이 여전히 나를 붙잡고 괴롭힌다면, 이제 그 흔적을 서서히 덜어내야 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갉아먹는 그리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는 더 이상 나의 곁에 남은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 우리는 손바닥에 펜으로 무심히 적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종이 한 장 없던 순간, 기록이 필요해 손바닥에 몇 글자 남기곤 했던 일들. 손바닥의 그 단순한 흔적조차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몇 번이고 비누로 문질러야 잔상이 사라진다. 하물며 지우기 어려운 유성 잉크라면, 그 잔상은 손바닥 위에 뿌연 그림자처럼 오랫동안 남아 그제서야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가슴 깊이 새겨진 누군가의 흔적을 덜어내는 일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까. 그것은 단순히 씻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 속에 아로새겨진 그 자취를 지우기 위해서는 오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조차 결코 서둘러 흘러가는 법은 없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자. 그 자국이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희미해지길 기다리자. 다만, 남은 미련이 내 안에서 서서히 파고드는 독처럼 자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풀어주는 음식들을 음미하고, 산들바람이 부는 길을 걸으며 나를 달래보자. 때로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낯선 풍경 속에서 나를 다독이는 것도 좋으리라. 그렇게 작은 시도라도 그 사람을 잊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해보는 것이 좋다.


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나의 사람이 아니다. 그의 남은 흔적이 나의 시간을 갉아먹지 않도록, 이제는 나의 시간을 고이 감싸며 남은 날들을 나만의 온기로 채워가야 한다.


신세연 드림.

이전 18화 내가 나의 영웅이 될 수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