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건 어쩌면 직업병 때문이었다. 기획 회의에 들어가면 핸드폰은 무음으로 바꿨고, 시선은 테이블 위의 자료와 이야기 속에 고정됐다. 회의 흐름이 끊기면, 다시 그 결을 따라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잠시 자리를 비우면 이미 이야기는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그래서 화장실조차 가지 않고 몇 시간을 앉아 있곤 했다.
집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들어낸 인물이 되어 행동하고 말하며 이야기 속을 헤엄치고 있을 때, 문득 현실로 나와야 하는 순간이 생기면 리듬이 완전히 깨졌다. 다시 글 속으로 들어가려면 한참을 망설이게 됐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 번 빠져들면, 다른 모든 것은 뒷전이 되었다.
그런 내가 그와 만났다. 그는 처음에는 이런 나의 방식을 이해해 주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연락이 늦어지는 날들이 이어지자, 그는 내가 나를 핑계로 삼고 있다고 믿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순한 서운함이 아니라 어딘가 확신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나는 초반에는 오해를 풀어주려 했다. 이래서 그랬고, 저래서 그랬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말이 끝난 뒤에도 남은 정적은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나의 리듬과 방식을 모두 이해시킨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설명을 멈췄다. 그의 오해를 받아들이는 게 더 쉬운 일처럼 보였다.
오해는 점점 커졌다. 그 끝은 의외로 단순한 질문이었다. 다른 사람이 생겼느냐고 그는 물었다.
그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동시에, 그의 오해가 얼마나 깊어졌는지 실감하게 했다. 다른 사람이라니. 그의 질문은 사실보다 상상에 가까웠지만, 내 마음 어딘가를 조용히 찌르고 들어왔다. 그는 내가 연락을 피하는 이유를 그토록 간단하게 결론짓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그의 오해를 풀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어쩌면 풀어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끝났다. 그의 오해는 풀리지 않았고, 아마도 더 깊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침묵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모든 설명과 변명을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나는 덜 지쳐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생각했다. 그때 조금 더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그의 오해를 풀어주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관계의 끝이 달라졌을까. 아니면, 그때처럼 그냥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 최선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