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조교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전날 회식으로 피곤해서 화장도 하지 않고, 안경을 쓰고, 대충 입고 출근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주차장에 있다는 말이었다. 회식 후 피곤할 테니 데리러 왔다는 것이었다.
학교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어쩐지 길고 낯설게 느껴졌다. 내 시력은 마이너스 10이다. 렌즈나 안경 없이는 세상이 뿌옇게 번지고, 손을 더듬어야 앞을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날 내가 쓰고 있던 두꺼운 렌즈의 둥근 안경은 눈을 작아 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편한 차림에 안경까지 쓰고 그를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나를 발견한 그는 웃으며 “뺑글이 안경 썼네?”라고 놀렸다.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그의 가벼운 놀림은 어쩌면 나를 더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그날부터 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화장을 하지 않고, 안경을 쓰고, 머리를 묶은 채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 꾸미지 않아도 된다는 건 자유롭고도 편안했다. 그 편안함이 나를 안심하게 했다.
하지만 너무 편안해진 탓이었을까.
대화도 행동도, 서로를 대하는 태도도 점점 달라졌다. 어느새 우리는 연인이라는 선을 넘어 친구처럼, 혹은 가족처럼 서로를 대하기 시작했다. 익숙함은 서로를 위한 배려와 긴장감을 서서히 앗아갔다. 그 익숙함은 결국, 관계를 흔드는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너무 가까워지니 사소한 말다툼이 잦아졌다. 감정이 쌓이고, 그 다툼은 점점 더 깊은 골로 이어졌다. 익숙함과 편안함이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 같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마치 너무 가까이 심어진 두 나무가 서로의 가지를 얽히게 하며 자라다 끝내 부러지는 것처럼,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균열을 만들어갔다.
사랑은 조심히 다루어야 하는 유리잔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더 이상 조심하지 않았기에, 균열은 그때 시작된 것이었다.
편안함만으로는 사랑을 지킬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