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흔히 설렘으로 시작하고,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기억된다. 하지만 내게 가장 아름다웠던 사랑의 순간은, 시작이 아닌 오히려 사랑이 끝났던, 바로 그때였다.
그와는 오래 만났다. 익숙해서 좋았고, 익숙해서 편했다. 서로 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나도 모르는 새 죽어가고 있었다. 매일 하던 통화는 어느새 줄었고, 농담 대신 한숨만 점차 늘었다. 설렘은 지침으로, 호기심은 무관심으로 변해갔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통화는 생사를 확인하는 의례일 뿐이었다.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우리는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혀 있었고, 그렇게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헤어지자고 말하는 순간,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고, 그마저도 천천히 움직였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헤어지고 있었던 걸, 그제야 알았다. 가슴 한쪽이 울컥했지만, 목소리는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그 말이 얼마나 무겁고 슬픈지 알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는 확신이 있어 되려 후련했다. 더 잘할 걸, 더 사랑할 걸 같은 후회도 없었다. 바꿀 수 없는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했고 정확했다.
그럼에도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건강하길, 웃을 일이 많길, 좋은 사람을 만나길. 나에게 사랑의 끝은 사랑보다 더 따뜻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딱 하루 울었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고 나니, 다음 날 바로 멀쩡해졌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었지만,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았다.
사랑은 불씨와 같았다. 처음엔 작은 불꽃이었지만, 금세 타오르며 모든 걸 태웠다. 하지만 결국 남은 건 뜨거운 재였다. 한때 뜨거웠던 불꽃의 흔적, 더는 타지 못할, 작은 바람에 흩날릴 재가 되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사랑의 끝은 당연히 이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끝에서야 비로소 내가 더 선명해졌다. 사랑이 없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사랑이 없는 지금이 더 가볍고, 더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