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 처음 느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순간이 쌓이고 덮였고, 그 위에 또 다른 감정들이 겹겹이 포개졌다. 사랑은 처음이 아니라, 가장 마지막으로 느꼈던 순간이 더 선명하다. 그러나 그마저도 불투명하게 빛바랜다.
사랑이란 감정은 언제나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이유 없이 웃음이 났던 날, 예상치 못한 한마디에 마음이 녹아내리던 날, 그 모든 작은 순간들이 모여 사랑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그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매일의 사소함 속에서 스며드는 감정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설렘은 익숙함으로 변했고, 그 익숙함은 때로 무뎌지는 감정을 낳았다. 그러나 그 무뎌짐 속에서도 놓치지 않았던 온기가 있었다. 사랑은 늘 그렇게 지나가면서도 흔적을 남겼다.
연애를 쉬고 있는 지금, 감정이 무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은 조금씩 굳어져 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편안하다. 사랑은 한 사람을 무조건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온갖 복잡한 감정을 동반한다. 불안과 짜증, 서운함과 자책. 사랑을 하지 않으면 그런 고민들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그러나 사랑 없는 삶이 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가끔 나는 내 자신을 마른 낙엽에 비유한다. 가볍고, 푸석푸석하며, 바람 한 번에 흩어질 것처럼 위태롭다. 안정적이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오랜 시간 연애를 하지 않고 살고 있는 요즘이다. 어느새 사랑이란 단어가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이제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조차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이란 감정이 여전히 어떤 온기를 품고 있다는 건 안다.
언젠가 또 한 번, 바람처럼 스쳐가리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