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 때면 펜으로 손바닥에 뭔가를 적곤 했다. 잊지 않으려고 서둘러 쓴 글씨였다. 하지만 그 자국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물로 씻어도 남아 있었고, 세정제를 써도 희미한 흔적이 계속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흐려졌고, 어느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언제 없어졌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없어진 뒤에야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됐을 뿐이었다.
그 작은 식당도 그랬다. 어느 날 그곳을 지나가다 보니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낯선 이름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순간 조금 허전했다. 그 식당이 사라졌다는 건, 거기에 남아 있던 내 기억의 흔적도 갈 곳을 잃었다는 뜻 같았다.
식당 자체가 특별한 곳은 아니었다. 음식이 유별나게 맛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분위기가 뛰어났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괜찮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시절엔 자주 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좋아했으니까, 나도 따라간 거였다.
헤어진 후에도 그 식당은 한동안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가 먼저 바뀌었고, 그다음으로 우리가 바뀌었지만, 식당은 변하지 않았다. 그 앞을 지날 때면 문득 그 시절의 공기가 떠올랐다. 그와의 대화보다는, 그 자리에서 느꼈던 햇볕이나 겨울의 차가운 공기 같은 것들이 더 선명하게 기억났다.
가끔은 유리창 너머를 살펴본 적도 있었다. 혹시라도 그가 그곳에 있을까 싶어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지나쳤겠지만, 있을까 봐 두근거렸던 적도 있었다. 친구들과 그곳에 갔던 날도 있었다. 괜히 주변을 살피며 혹시라도 마주칠까 긴장했던 기억도 난다.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헤어지고 나서도 그 시절의 흔적을 붙잡고 있었던 셈이었다.
그런데 식당이 사라지고 나니, 내가 그곳에 묶여 있던 마음도 더는 갈 곳이 없었다. 더는 유리창을 힐끗거릴 이유도 없었고, 괜히 가슴이 뛰는 일도 없었다. 처음에는 허전했지만, 이게 다행이라는 걸 곧 알게 됐다.
손바닥에 남았던 펜 자국도 그랬다. 아무리 문질러도 희미하게 남아 있던 흔적이 어느 날 깨끗이 사라졌다. 작은 식당도, 그와의 기억도 그렇게 서서히 지워졌다. 언제 없어졌는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 깨끗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라지고 나면 그뿐이었다. 잊으려 애쓰지 않아도, 결국은 흐려지고 사라진다. 어쩌면 나는 그걸 확인하려고 그 식당을 계속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