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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연 Dec 17. 2024

나쁜 이별은 없었다

그와 헤어질 때 모진 말을 참 많이 했다. 이제 와서 떠올리면 조금 부끄럽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야 했다. 억울했던 기억, 서운했던 마음, 속에 있던 걸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쏟아냈다. 그러고 나니 이상하게도 후련했다. 미련이 남을 틈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잠들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니 공허함이 밀려왔다. 매일 아침 그가 보내던 굿모닝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잘 잤냐고 묻는 짧은 한마디부터 오늘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까지. 별것 아닌 메시지였지만, 매일 아침의 시작이 되어 주었던 그의 다정함이 더 이상 내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매일 오던 메시지가 멈춘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텅 빈 방 안에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모든 게 변해버린 느낌이었다.


그 공허함을 없애려고 등산을 갔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오르는 내내 힘들어서 몇 번이나 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힘듦이 나쁘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상에 올랐을 때는 오히려 마음이 상쾌했다. 땀에 젖은 몸과 달리, 머릿속은 깨끗했다. 이별도 비슷했다. 오르는 동안 고통스러웠지만, 정상에 다다르면 모든 걸 털어낼 수 있는 것.


그렇게 일상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가 기다릴까 봐 서둘러 아침에 메시지를 보냈다. 한쪽 눈만 뜬 채로 침대에서 간신히 손을 뻗어 화면을 터치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았다. 더 이상 억지로 일어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늦잠을 잤다. 


그와의 이별은 분명 아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쁜 기억만은 아니었다. 해야 할 말을 다 하고 끝냈기에 미련이 없었고, 그로 인해 나는 내 시간을 찾아갔다. 그의 다정함 속에서 한때 행복했지만, 이별 후 내가 나 자신에게 보여준 다정함은 그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


나쁜 이별은 없었다. 이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결국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 그 사람은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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