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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인간이라는 직업을 관두고 싶을 때

프란츠 카프카가 그린, 인간의 피로에 대한 초상

by 신세연

어느 날 아침, 세일즈맨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회사의 출근 시간에 늦을까 봐 몸부림치며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문틈 사이로 보인 것은 그의 상사와 가족의 공포에 질린 얼굴뿐이었습니다. 아들이자 가장이자 노동자였던 그레고르는 그날 이후 방 안에 갇힌 채 서서히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잊혀집니다. 처음엔 여동생이 그를 돌봤지만, 이내 그녀마저도 그를 두려워하고 혐오하게 됩니다. 가족들은 마침내 그가 사라지자 안도하며, 새로운 삶을 계획합니다. 인간이 한순간에 벌레로 변했다는 이 기괴한 설정은, 오히려 너무 현실적입니다. 그는 단지 인간이라는 직업을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일 뿐이니까요.


카프카의 시대는 산업화가 시작되던 초입이었습니다. 인간은 점점 더 톱니바퀴가 되어갔고, 노동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 그것이 인간됨의 기준이던 시대였습니다. 그레고르는 그 체계 안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인간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역할에는 끝이 없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노동, 감정의 억눌림, 타인의 시선을 향한 긴장. 결국 그레고르의 ‘변신’은 초현실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한 인간 역할에 지쳐버린 몸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는 가족과 사회의 기대를 버텨내다 스스로의 언어를 잃었고, 마침내 ‘벌레’라는 형태로 사회의 언어 밖으로 밀려난 겁니다.


카프카는 ‘노동의 피로’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작가였습니다. 그는 보험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도 글을 썼고, 매일 밤 인간과 직업 사이의 간극에 대해 고뇌했습니다. 그에게 인간은 늘 “살아야 하지만 살고 싶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변신』 속의 벌레는 그런 인간의 초상입니다.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사회에선 쓸모로 평가받으며, 자신을 사랑할 이유를 잃어가는 사람. 그는 벌레가 된 것이 아니라, 이미 벌레처럼 살고 있었던 인간이었죠.


이 소설의 공포는 ‘변신’이라는 사건이 아닙니다. 진짜 공포는 아무도 그레고르의 고통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데 있습니다. 가족은 그의 변화를 불편해하고, 세상은 그의 부재에 무관심합니다. 그를 벌레로 만든 것은 사실 가족과 사회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것은 어쩌면 너무 오래 참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피로가 한계에 다다랐고, 인간 역할의 껍질이 더 이상 그를 보호하지 못한 겁니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존재에서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짐’으로 바뀌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조건적인지를, 카프카는 잔인할 정도로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인간으로 출근합니다. 사회가 정한 역할의 옷을 입고, 정해진 말투로 대화하고, 정해진 감정의 농도로 웃습니다. 직장에서는 유능한 사람, 집에서는 착한 사람, 관계 속에서는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살아가죠. 그러나 이 모든 ‘인간 수행’은 점점 더 우리를 피로하게 만듭니다. SNS에서조차 우리는 ‘감정의 관리’를 하고, 좋아요와 팔로워 수로 존재 가치를 측정합니다. ‘나답게 사는 것’조차 하나의 업무가 되어버린 시대, 우리는 점점 더 완벽한 인간이 되려는 노력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인간성을 잃어갑니다.


그래서 『변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읽힙니다. 그레고르의 변신은 비현실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겪는 일상의 피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니까요.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은 때로 직업보다 더 고된 노동입니다.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끊임없이 쓸모를 증명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을 수행해야 하죠.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언젠가 몸과 마음의 경고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어느 날 아침 문득, 자신이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게 된 것을 깨닫습니다.


그레고르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비극이 아닙니다. 그는 더 이상 인간 역할을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해방의 상태에 도달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가족이 새 출발을 이야기할 때, 카프카는 묻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언제까지 쓸모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변신』은 이 질문을 통해 우리에게 거울을 내밉니다. 우리는 정말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인간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걸까요?


누구나 언젠가는 그레고르가 됩니다. 피로에 무너지고, 관계에 지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홀로 남을 때, 우리는 잠시 인간이라는 옷을 벗고 싶어 집니다. 그 순간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것은 부정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 기대를 내려놓는 용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고요함.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 돌아오는 과정입니다. 카프카의 『변신』은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벌레가 된 것은 그레고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역할에 자신을 가두어버린 우리들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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