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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an 02. 2024

시집살이는 낯선 언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정원에서 나무를 손질하는 소리와 부엌의 그릇 덜컹이는 소리가 이른 아침을 소란스럽게 깨우고 있었다. 그 소리는 일주일 중 유일하게 늦잠이 허락된 일요일의 달콤함을 파괴하는 소음이었다.


결혼을 하고 가장 소망했던 것 중 하나가 늦잠을 실컷 자보는 것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 일찍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은 고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요리 솜씨가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음식 만드는 맛에 아침 준비를 즐겼을 텐데 솜씨도 없는 사람이 매 끼니를 책임진다는 것은 하루의 반 이상을 식사 준비로 머리를 가득 채우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임신으로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아침 준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로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임산부만이 누릴 수 있다는 단잠의 혜택을 꿈꾸며.


하지만 그런 기대는 부풀었다 금세 터지는 물거품에 지나지 않았다. 임신을 했어도 식사 당번은 여전히 내 몫이었고, 거기에 추가된 입덧과 육아의 고통은 덤이 되었다. 그 시절 잠이 부족했던 건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이가 잠이 들었을 때 나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것도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았다면 아이가 잠들었을 때 같이 자고, 깨었을 때 같이 깨었을 텐데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입장에선 그럴 수가 없었다. 늘 삼시 세끼를 준비해야 했기에 잠 시간을 조절하는 건 나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늙은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을 수시로 하셨기에 식사 시간은 놓칠 수 없는 임무가 되었고, 특히 아침식사는 임금처럼 먹어야 한다는 말에 아침식사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가끔 그와 같은 삶을 살다 보면 맞는 말을 들어도 삐딱하게 거역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론적으로 명확한 답을 지닌 말이나 행동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 때는 필요한 사람에게나 가져다 주라며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그런 때다. 아침밥이 아무리 건강에 좋다 해도 단 몇 분의 단잠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털어버리고 싶은 먼지다. 행복의 조건을 하나의 기준에 맞춘 이론가의 공허한 울림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 말이 지금은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분명히 틀렸다.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잠이었고 중요한 것도 잠이었다.


그런 시절에 일요일에나 주어졌던 아침밥의 해방은 행복한 일탈이었다. 내가 시집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안온함이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이면 딱딱딱 나무를 자르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문을 여닫는 소리가 나를 깨웠다. 비록 그 소리가 그분들의 의도로 생긴 소리가 아니었을지라도 나에게는 어서 일어나라는 무언의 외침처럼 불편했다. 잠을 자도 편치 못한 잠을 자게 만들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아침밥은 각자 알아서 먹자는 어머니 말씀 덕에 아침밥에서 해방되었다. 지금은 저녁에 음식을 장만해 놓으면, 아침에 어머니께서 드시고 싶은 시간을 택해 식사를 하신다. 가끔은 혼자 식사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언짢다. 그럴 때면 식사 시간을 맞춰 같이 먹을까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못된 며느리 소리를 듣는 한이 있어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동안 잘한다는 말도 못 들으면서 잘하려고 노력했던 일들이 나에게 시집살이로 남았던 것이다. 나의 노력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노력은 더 이상 가치 있는 일이 아니다. 과거의 노력이 망각이란 이름 안에서 모두 다 사라진다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네가 얼마나 힘든 시집살이를 했다고 그런 말을 하냐고 나무라도 상관없다.


50이 넘으니 이런 게 좋다. 이제는 시집살이란 말이 더 이상 나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라는 것과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많아졌다는 거. 예전에는 부모님과 남편, 아이들의 시선에 눈을 맞추느라 나를 돌아보지 못했다. 지금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작고 여린 내 감정들을 세세히 살피고 있다. 나를 더 사랑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 인생은 흐느끼거나, 훌쩍거리거나, 미소 짓는 일의 연속이지만 그중에 훌쩍이는 일이 제일 많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결혼 초 많이 흐느꼈고, 지금은 가끔 훌쩍이며 많이 미소 짓고 있다. 모르긴 해도 앞으로의 날들은 미소 짓는 일만이 가득할 거라는 착각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어머니의 문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소리가 나지 않는 게 더 걱정되는 날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나에게 시집살이? 이 단어, 참 낯선 어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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