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폰 소리를 들은 남편이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는 밖으로 나갔다. 집 앞에 택배차가 주차되어 있다. 겉옷을 입고 나온 사이 남편은 벌써 택배 기사님이 건넨 배추상자를 받아 대문 안으로 옮긴다. 기사님이 상자를 주면 남편은 받고, 다시 주면 받고. 주고받기를 반복하는데 그 폼이 자못 리드미컬했다. 빈 상자라도 옮기는 것처럼 둘의 행동이 가볍다. 김장철이면 절임배추 때문에 택배기사님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데 박스에는 무게가 없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들의 행동을 보고 거들 수 있겠다 싶어 상자 하나를 집어 드는데 웬 걸 상자는 바윗덩이라도 들었는지 꼼짝하지 않는다.
"뭐야, 이게 왜 이렇게 무겁지."
"무겁지 그럼. 20kg면 쌀 한 포대 무겐데 가벼울 리 있나."
"그런데 이 무거운 걸 그렇게 가뿐히 들었어. 오올 울 서방님 힘이 장산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따라와. 배추 물 빼야 하니까."
작년에 주문한 항암배추가 맛있어 다시 주문한 건데 이제 보니 유황배추네.
박스를 든 남편 뒤를 졸졸 따라 수돗가로 갔다. 전에는 이 수돗가에서 배추를 절이고 씻는 일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절임배추를 사서 쓰니 이렇듯 물 빼는 일만 하면 된다. 남편이 상자에서 배추를 꺼내 나에게 건네면 내가 배추 밑동을 잡고 감은 머리카락 쥐어짜듯 물기를 훑은 후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나무판 위에 가지런히 눕힌다. 남편이 건네면 내가 받아 짜서 눕히고. 또 건네면 받고, 짜고, 눕히고. 우리의 행동에도 리듬이 들었다. 이런 게 노동이라면 투덜거림 없이 김장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배추를 모두 잠재운 우리는 마당 한 귀퉁이에서 손수 키워낸 배추를 수확했다. 배추는 고추를 뽑은 자리에 심은 탓에 심는 시기가 조금 늦어 속이 제대로 차질 못했다. 모종 50개를 심었는데 뽑아 절일 만한 건 겨우 15 포기뿐이었다. 배추를 뽑아 드는데 하나같이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노란 속이 앙증맞게 들어차 배추가 틀림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 이만큼이라도 자라줘서 고맙다.
그릇에 비해 빈약한 우리 집 배추. 푸르름이 남다르네^^
뽑아낸 배추의 뿌리를 자르고 반으로 갈라 소금물에 절였다. 배추가 연하니 반나절이면 숨을 죽을 것 같아 퇴근하고 씻을 테니 남편에게는 절대 손대지 말라고 일렀다. 배추를 손질한 자리에는 겉잎들이 갈 곳 잃은 아이들처럼 처량하게 놓여 있었다. 얼마 전까지 한 몸으로 있던 친구들이 쓰임을 위해 떠나면서 버려진 신세가 된 것이다. 잎들을 쓸어 모아 버려야 하는데 안쓰러웠다. 배추애벌레, 달팽이들까지 구멍을 송송 뚫어 안전한 먹거리라고 증명해 줬는데 버려야 하다니. 쓸만한 잎들을 주워 모았다. 이것들을 삶아 시래기를 만들면 된다. 시래기는 한겨울 된장국이나 감자탕의 재료로 적격이 아닌가.
겉잎은 삶아 시래기로 만들려고 남겼다.
비록 속이 차지 않아 절이면 푹 줄어들 배추지만 내 손으로 키운 것이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이런 마음은 우리에게 절임배추를 보낸 농부도 같을 것이다. 그가 키운 배추가 몇 천 평의 밭을 푸르게 물들였다 해서 그것들이 귀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풍년이 들어 배추들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눈부셔도, 흉년이 들어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 보여도 농사를 짓는 농부에겐 다 귀하디 귀한 농작물이다.
그래서 과잉 생산으로 자신이 키운 농작물을 갈아엎던 농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풍년이 들어 흔한 농산물이 되었다 해도 그 농작물에 대한 자신의 애정이 사라진 것은 아닐 테니까. 그런 일을 할 때의 마음은 옳지 못한 길을 걷는 자식을 바른 길로 이끌고자 매를 든 부모의 마음과 같은 건 아니었을까. 눈물을 머금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올해도 김장을 했다. 해가 갈수록 김장에 대한 부담이 줄고 있다. 일이 익숙해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피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한몫을 한 것 같다. 언젠가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을 때만이라 즐겁게 하자는 마음. 이런 일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는 건 내가 건강하다는 증거 아닌가.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의 김장을 쭉 이어가자. 내년 김장 때는 어떤 글이 쓰일지 기대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