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빛구슬 Dec 12. 2023

나이 드니 더 고마워지는 친구란 존재

친구는 더운 여름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주는 존재.

사회에서 일로 만난 친구는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친구란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 학생시절의 사귐만이 진정한 사귐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게 이해를 따지는 시기가 따로 있고,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시기든 마음에 맞는 친구는 사귈 수 있고, 그 만남이 꾸준히 유지되다 보면 관계도 자연스럽게 깊어지게 마련이다. 비록 관중과 포숙아나 백아와 종자기처럼 웅장하고 거대한 만남은 아닐지라도 만나면 기분 좋고, 헤어지면 아쉬운 그런 만남으로 말이다. 그런 관계 속에서는 나를 포장하거나 숨기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해진다. 어떤 모습으로든 나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관계도 첫눈에 반하는 연인들처럼 한 순간에 짠하고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만남이 얕을 때는 우정도 얕다. 그럴 때 사람들은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 자신을 포장한다. 만남의 시간에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옷을 입은 상대를 본다. 그가 든 가방과 신발에 신경을 쓰며 조금씩 삐져나오려는 자신의 모습은 애써 뒤로 감춘다. 그러다 관계가 깊어지면 물건들로 상대를 보지 않고, 그의 얼굴을 살피고 말소리를 듣는다. 더 이상 자신을 감출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나에게는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있다. 친구라곤 하지만 나이는 제각각이다. 또래도 있고, 한두 살 터울도 있다. 그들과 30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이제는 무릎 나온 운동복을 입고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사이가 되었다. 가끔은 허물없음이 지나쳐 아이들이 입지 않는 옷을 입고 나갔다가 궁상 좀 떨지 말라고 타박을 들은 적도 있다. 이 마저도 관계가 깊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핀잔이니 웃음으로 넘길 수 있다. 지금은 같은 곳에서 일하지 않아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소식이 뜸하다 싶으면 즉시 카톡으로 안부를 전할 수 있으니 친구 있음이 곧바로 증명된다.


이런 친구들도 결혼 초에는 예의상 거리가 있었다. 각자의 집을 방문할 때는 약속을 잡았고, 초대를 할 때는 청소를 하고 음식을 장만했다. 보기 좋은 건 앞으로 꺼내고, 보기 싫은 건 뒤로 감췄다. 사적인 얘기도 흠으로 남을 수 있는 말들은 삼갔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말하기는 쉽고 행동은 편해졌다. 이제는 설거지가 되어 있지 않은 집에 예고 없이 방문하기도 하고(물론 주인이 가자고 한 경우다), 만들어 둔 음식이 없어도 친구를 초대해 먹고 싶은 걸 주문해 먹기도 한다.


하기 힘든 말도 자연스럽게 꺼낸다. 시간을 지나온 동안 자랑도 흠도 다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꺼내기 힘든 말이라는 게 어디 있을까. 오래된 친구가 좋은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나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비슷하니 고민 또한 비슷한 점도 만남이 편해진 이유다. 예전에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젊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아이들이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하면 솔직히 좀 무서워. 혹시라도 지원을 못해주면 어쩌나 싶어서. 지금은 어떻게든 일을 하고 있지만 더 나이 들면 언제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


경제적으로는 아무 부담이 없을 것 같은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하면 나도 덩달아 내 입장을 말할 수가 있다.


"맞아. 자식 한 명 서울로 대학 보내면 납부금에 집 월세, 용돈까지 알게 모르게 많은 돈이 드는데 거기에 대학 이후까지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하면 걱정이 되지. 공부하겠다는 자식을 보고 '알았어. 하지만 부모의 의무는 여기까지니 대학 이후는 이제 네가 알아서 해'라며 무시할 순 없잖아."


친구들이나 나나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자식에 대한 리스크는 여전했다. 그런 말을 할 때면 일찍 결혼해서 일찍 자식을 낳을 걸 그랬다며 누구라고 말할 것 없이 열을 올린다. 하지만 이런 말은 절대 자식들 앞에선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런 말을 했다간 그렇게 부담되는 지식을 왜 낳냐며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겠다고 달려들지 모르니까. 그러니 사위와 며느리, 손자, 손녀를 보고 싶은 부모는 자식 앞에서 늘 의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얘기는 친구들 앞에서 경쟁하듯 떠들어서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너의 짐은 내가 들어줄게, 내 짐은 네가 가져가라 주고받으며.


그래서인지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속이 시원하다. 아니 속이 꽉 찬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나이 들수록 친구가 있어야 하는 까닭이 이것이다. 친구는 더운 여름날 이마에 맺힌 땀을 씻어주는 바람과 같은 존재다. 가끔은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일로 만난 친구가 이렇게 오래도록 내 곁을 지켜준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전 04화 보험을 해약하고도 속이 시원했던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