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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Nov 28. 2023

좋은 음식은 영혼을 데워주는 난로다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 2

운동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었다. 그 사이 자연스럽게 식단이 조절되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식단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저 아프지만 말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을 뿐인데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다 보니 아무 음식이나 마구 먹어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운동이 전파한 선한 영향력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음식을 맛으로만 기억하지 않으려 애쓴다. 짧은 지식으로 재료들의 성분을 따지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일일이 재료의 효능이나 궁합까지는 분석하지 못한다. 다만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 탄수화물인지, 지방인지 아니면 단백질인지를 따질 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식단에 변화가 생겼다. 많이 먹는 음식과 먹지 않는 음식이 구별되면서다.


식단 조절은 단순하게 시작되었다. 많이 먹는 음식은 줄이고, 부족한 음식은 채우면 됐으니까. 그러는 사이 체중계가 내 몸을 분석했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지방이 과하다느니, 단백질이 부족하다느니 떠들어댔다. 도대체 네가 뭘 알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체중계 위를 올라갔다. 심지어 오줌을 싸고 와서도 몸무게를 쟀다. 가끔 오줌이나 덩(dung)이 몸무게를 변화시킬 때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쭈구리, 너의 존재가 이 정도였어?'


식단 조절을 하면서 제일 먼저 바꾼 것은 밥이다. 그동안 우리가 먹은 밥은 참으로 고왔다. 새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쌀은 한겨울 햇빛을 머금은 함박눈처럼 빛났다. 어떠한 잡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맛은 모든 반찬과 어울려 입안에서 잔치를 벌였다. 행복에 겨워 입꼬리까지 올렸다. 그런 밥이 순수함을 잃었다. 잡것이 너무 많이 섞였다. 이것저것 섞여서는 각자도생으로 흩어졌다.

내 잡곡밥은 따로 지어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다

순수한 백미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현미와 귀리, 카무트였다. 그들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 조화로움 같은 건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 얘들을 하나로 뭉쳐 볼 요량으로 찹쌀현미를 섞어 보았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여전히 밥알들은 살아 입안을 활보했고, 적극적인 입운동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이 좋아 '건강한 밥이다'를 뇌에 주입시키며 먹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단다. 어머니가 잡곡밥은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하니 남편도 덩달아 씹기가 불편하다며 어머니 편에 붙었다. 빨리 씹어 빨리 삼키고 싶은데, 천천히 씹어 천천히 삼키려니 속이 터지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어머니와 남편이 애정하는 백미에게로 돌아갔다. 별안간 외톨이가 되었다. 서로 섞이지 못하는 나의 잡곡밥들처럼.


어머니와 남편이 백미에게 돌아가니 밥을 두 번 지어야 하는 어려움이 생겼다. 밥 짓는 것이 귀찮아 잠시나마 나도 백미에게로 돌아갈까 고민했다. 잡곡을 고집하는 나에게 어머니와 남편이 유별을 떤다며 비웃을 것도 같았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일었지만 참았다. 내 몸을 지키려고 내가 하는 일인데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뭐가 있겠나 싶었다.

두부를 기름에 지져 초간장에 찍어 먹으면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여러 채소가 들어간 달걀스크램블


밥을 바꾸고 가장 많이 먹은 건 달걀과 콩이다. 댤걀은 삶은 달걀을 기본으로 달걀찜, 달걀프라이, 달걀스크램블을 만들었다. 바뀐 식단의 모토가 믹스(mix)라도 된 것처럼 많은 재료를 섞어 만들었다. 찜을 할 때는 달걀 푼 물에 양파와 파, 당근, 버섯 등을 다져 넣었고, 스크램블도 먼저 양파와 당근을 볶은 후 달걀 푼 물을 부어 잘 섞은 후에 방울토마토와 시금치를 넣어 만들었다. 하나의 음식으로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두부는 된장국, 소고깃국, 김치찌개를 가리지 않고 넣었다. 바쁜 날은 그대로 구워 초간장에 찍어 먹었다. 이마저도 하기 힘들었을 땐 미리 만들어 둔 콩자반을 밥처럼 떠먹었다. 고기반찬이 아니더라도 싼 가격에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건 유익하면서도 고마운 일이다. 달걀과 콩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몸을 생각해서 아무 음식이나 먹지 않겠다는 의지는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뜻과 통한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시바랭이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란 말로 음식과 사람의 관계를 설명한 것은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알았기 때문이다. 먹는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이 자신의 몸을 생각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입을 즐겁게 하려는 사람인지 몸을 즐겁게 하려는지 알았다는 뜻이다.


식단 조절로 음식을 천천히 씹으니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고, 음식 본연의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음식에 들어간 재료 하나하나의 소중함도 알았다. 비록 입안을 휘몰아치는 감칠맛의 향연은 아니더라도 행복할 수 있었다. 적게 먹으니 몸은 가벼워졌고, 몸이 가벼우니 마음 또한 가벼웠다. 음식이 몸을 단련시켜 줄 뿐만 아니라 마음 곳곳을 어루만졌다. 영혼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음식에게 아부하는 건 아니지만,


좋은 음식은 영혼을 데워주는 난로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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