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한두 해 글을 쓴 것도 아니면서 글의 소속이 어디인지 구분을 못해 지난주 엉뚱한 곳에 글을 올렸습니다. 연재 브런치북에 올려야 할 글을 매거진에 올려버린 거예요. 매거진 글을 다시 브런치북으로 옮기니 혹시라도 글을 읽으셨던 분은 당황하지 말아 주세요.
지난 추석 때의 일이다. 경기도로 이사를 간 친구가 시댁에 내려온 김에 잠시 짬을 내 나를 만나러 온 적이 있었다. 친구는 평소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는데 이번에는 관리가 특별했는지 유독 살이 빠져 보였다. 오십 넘어 그와 같은 날씬함은 경계의 대상이 된다.
"뭐야, 살이 왜 이렇게 빠졌어. 얼굴이 내 주먹만 하잖아."
"어, 좀 빠졌지. 요즘 00 아빠랑 운동 좀 하거든. 내 차림을 봐. 오늘도 운동하려고 이런 차림으로 왔지."
아니나 다를까 친구의 옷차림은 시댁을 방문하는 사람치곤 다소 무례해(?) 보이는 운동복 차림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남편과 함께 우리나라 100대 명산 오르기를 목표로 등산을 하고 있다고 했다. 걷는 것이 좋아 시작한 운동이 자연스레 등산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등산을 하다 보니 건강이 좋아졌고, 건강이 좋아지니 등산은 포기할 수가 없는 루틴이 되어버린 것이다.
친구와 헤어진 후 고무된 바가 컸다. 이 나이에 이 정도면 됐지 얼마나 더 날씬해지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냈던 지난날들이 강하게 한 방 맞았다. 이제껏 내가 나에게 보냈던 마음의 위로는 결국 몸을 방치하는 일에 불과했다. 그날 난 결심했다. 이 나이에 이 정도면 됐지가 아니라, 이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 몸 관리에 들어갈 때가 되었노라고. 그렇게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 추석 연휴가 끝나기 전, 남편의 손을 잡고 집 근처에 있는 산책길 위에 섰다.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운동을 위해 나선 길이었다.
우리는 길 위에서 경치를 즐기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빨리 걷기를 시작했다. 일부러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선택해 달리기도 했다. 심장이 째질 것처럼 아프고,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것 같아 헉헉거리면서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 정도 쉬는 건 괜찮겠지 핑곗거리를 찾게 된 날엔 운동복 먼저 입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기 무섭게 대문을 나선 것도 그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고작 일주일에 한두 번인데 뭐. 그 정도는 빠져도 돼.' 악마의 속삭임은 온유하고 달콤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코 끝을 간질이던 금목서의 향이 지나고, 붉게 몸을 달군 단풍이 눈에 찾아들었다. 가을이 물든 것이다
그렇게 한 달을 걷고 뛰었다. 걷고 뛴 한 달의 노력은 몸과 마음에 변화를 주었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획득하게 된 건 운동이 가져다준 가장 큰 소득이었다.
운동으로 몸이 얻은 자신감은 전에 입지 못한 옷을 입은 데서 생겨났다. 언젠가 썼던 글에서는 살이 찌면 옷을 사면 되는 일이라고 일갈했는데, 그 말은 운동을 해보지 않아 뱉어낸 방자함이었다. 솔직히 지금까지도 몸무게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팔다리를 열심히 놀린 탓에 팔과 다리가 가늘어져 전에는 잘 들어가지 않던 옷들이 쉽게 들어가고 있다. 허리도 할록은 아니지만 나름 가늘어졌기에 옷태도 괜찮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똥덩어리 똥배가 자신의 모습을 미련스럽게 유지해 한 달의 노력을 옥에 티로 만든 건 흠이라면 흠이다. 그렇지만 운동의 기록을 여기에서 멈출 것은 아니기에 이것 또한 결과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언젠가는 이런 모습도 달라질 것이니.
마음은 가능성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무엇이든 시작하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변화는 일어난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마음에 생겼다. 나이가 들수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자꾸만 시작을 유예하게 된다. 젊어서 실패는 그나마 견딜 수 있는데, 나이 들어서 실패는 끝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는 나약한 변명으로 어깨를 움츠린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시작은 괜찮지 않나. 돈 드는 것이 아니고 실패한들 예전의 몸매로 돌아가는 본전에 불과하니.
나이 들어가는 몸과 마음에게 '이 정도면 됐어'라고 말하는 것은 '100세 인생에서 당신의 2막 인생은 책임질 수 없어요'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긴 인생에서 꼭 챙겨야 할 첫 번째는 건강이다. 그 건강을 위해 자신만의 운동법을 찾아보도록 하자. 좋은 풍경 위에서 뛰어도 좋고, 전문 운동시설에서 관리받아도 좋다. 다람쥐처럼 집 주변을 빙빙 돌면 또 어떠랴. 몸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세포들에게 알려주면 그뿐인 걸.
날이 추워지고 있다. 운동은 날이 풀리는 봄부터 해야지, 미루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런 마음이 생겼다면 그때가 바로 시작의 때다. 시작의 시점은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단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극복에 대한 의지는 점점 하락한다. 시작할 때의 마음이 가장 열정적이란 걸 생각할 때 시작은 가장 힘든 시기에 하는 게 답이다.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