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저의 필명은 조선여인이었습니다. 그 이름은 조선시대를 살았던 한 여인을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었어요. 제가 염두에 두었던 인물은 허초희.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누이이며, 동인의 수장이기도 했던 초당 허엽의 딸입니다. 우리에겐 허난설헌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이름마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조선에서 여자가 이름을 갖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허난설헌은 성리학에 매몰되지 않은 유연한 사고를 지닌 아버지 덕에 오빠 허성, 허봉과 동생 허균과 함께 공부를 하며 자랐습니다. 당시의 교육이 여인들에게 인색했던 것을 생각하면 헌난설헌의 아버지는 깨어있는 지식인이었던 게 분명합니다. 덕분에 허난설헌은 8세에 이미 신선이 사는 세계를 시로 표현한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지어 자신의 재주를 뽐내게 됩니다. 사후에는 그녀가 지은 시가 중국과 일본에 알려져 대단한 인기를 누리기도 하고요.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허난설헌의 삶은 참으로 화려하고 평탄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허난설헌의 삶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녀의 삶은 눈물과 한으로 점철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주목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한과 눈물로 범벅이 된 허난설헌의 삶. 저는 그녀의 삶이 제 삶에 투영되었다 생각했습니다. 결혼과 시집살이로 눈물 흘리며 살았던 그녀의 삶이 제 삶과 닮았다고 생각하면서요. 부끄럽게도 그리 멀지 않은 시간까지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습니다. 쓸데없는 자기 연민에 빠져서 말입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어요. 제가 눈물을 머금고 억울해, 억울해하며 썼던 글들이 참으로 볼품없고 초라한 푸념이었다는 것을요. 혼자 억울해하며 썼던 글들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견뎌낼 수 있는 그런 하찮은 투정들이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비참하지도 억울하지도 않은. 감히 그녀의 삶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조선여인이라는 이름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그 이름의 무게를 감당해 낼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은빛구슬이란 필명으로 글을 씁니다. 은빛구슬은 제 한자 이름을 한글로 풀이한 것이어요. 아직 당당하게 이름을 밝히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이겠죠. 이제 은빛구슬이 기록하는 글들은 이전의 글보다 더 안온하길 꿈꿔 봅니다. 가만히 앉아서가 아니라 필요한 노력들을 통과하면서요. 저에게 남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하나둘 지워지면 저의 낡은 역사도 조금씩 닦아지겠죠. 오늘의 작은 날갯짓이 비상을 위한 커다란 발돋움이 되길 바라봅니다.
혹시라도 지금의 삶이 무기력하다고 생각하신 분이 계시다면 무엇이든 시작해 보세요. 모든 시작은 미숙하지만, 그 미숙함이 신인의 신선함으로 삶을 투명하게 만들 테니까요. 단풍들 나이에도 시작이란 말 앞에 수줍어지는 저는 아직 초록이고 싶습니다. 비록 제 글이 신선함으로 통통 튀지는 않겠지만 보는 눈이 피로하지는 않게 할게요.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 후반전, 첫걸음은 다음 주부터 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