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빛구슬 Apr 16. 2024

누가 보면 싸운 줄 알겠어

"살이 좀 빠졌네"

친구의 첫마디가 나의 입고리를 올렸다.


"그래? 다행이다. 나는 너처럼 관리받으며 운동하는 게 아니니까 걷는 거 하나는 진심으로 해야지. 믿기 힘들지 모르지만 우리 부부는 운동할 때 말 한마디도 안 해. 죽어라 앞만 보고 걷지."

"말을 한마디도 않는다고? 산책을 하면서? 에이, 설마. 너네 그러다 괜히 부부 싸움하고 나온 부부로 오해받는다."

"그럴지도. 하지만 그게 진실인 걸. 우린 진짜 그렇게 걸어."


친구는 우리 부부가 운동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우스웠나 보다. 진지하게. 굳은 얼굴로. 말 한마디 없이 팔다리를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앞만 보고 걷는 모습이 봄밤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다정하게 걷는 부부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진실로 그렇게 걷는다. 오직 그런 행동만이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신념 하나로 말이다.


나와 남편이 걷기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처음 걷기를 시작했을 때는 이것이 저녁 식사 후 우리의 일상이 될지는 몰랐다. 그때는 걷기 위해 의무적으로 마음을 다잡은 때가 더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집에 있으면 자꾸만 좋은 것을 놓칠 것 같은 기분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밖으로 나가야 마음이 편하다.


걷기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타이트한 운동복을 입고 작정한 듯 달리기를 하는 사람을 만났고, 다정하게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도 만났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겠다는 듯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년 여성들도 만났다. 그들은 모두가 길 위에서 하루 동안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있었다. 다정하게 대화하고, 수다스럽게 떠들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달리면서 하루를 마무리한 것이다.


처음 길을 걸을 때는 단풍이 물들었을 때였다. 서늘한 바람에 휘날리는 단풍이 좋았다. 겨울에는 하얀 눈의 싸늘함이 눈부셨다. 이 또한 좋았다. 계절마다 길 위에서 자연이 변해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얼마 전에는 꽃눈이 나리는 것을 봤다. 차갑지 않고 간드러진 눈이었다. 꽃눈을 보기 위해 걷기에 진심인 다리가 발을 멈췄다. 잠시 휘날리는 눈 아래 서게 한 것이다. 걷지 않았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설렘이었다. 


친구는 맞춤 운동이 자기에게 맞는다고 말했다. 빼고 싶은 부위의 살은 빼고, 필요한 근육은 키울 수가 있으니. 난 모르겠다. 나의 걸음걸음이 나의 어느 부분을 빠지게 하고 어느 부분을 키워주고 있는지를.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걷기는 남편과 나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해 주었으며,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마음을 너그럽게 해 주었고, 삶을 긍정하게도 해주었다. 그러니 걷지 않을 이유가 없다. 걷지 않으면 손해 보는 듯한 마음이 가득하니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렇듯 걸을 수밖에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