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가 되어야 한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나선 어머니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는 것처럼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한 것이다. 얼마나 망설였는지 헐렁한 바지 속에 숨은 다리가 맥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옆에서 함께 걷던 아주버님의 부축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어머니, 그냥 검사받으러 가는 거예요. 검사만 받고 바로 올 거니까 아무 걱정 마시고 가세요."
그렇지만 어머니에게 그런 말 따위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자꾸 고개를 돌려 나와 남편을 향해 묻고 또 물었다.
"나, 진짜 검사만 받고 오는 거지. 병원에 계속 있는 건 아니지?"
"그래요, 어머니. 걱정하지 마시고 형이랑 먼저 가 계세요. 저는 ㅇㅇ이 오면 바로 따라갈게요."
몇 달 전 어머니께서는 건강검진을 받으셨다. 건강검진 하나 받으면서 뭐 저리 요란을 떠나 싶겠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모두가 아버님 때문이다. 오래전 아버님은 자신의 다리로 병원엘 걸어가시고는 다시 그 길을 돌아 집에 오질 못하셨다. 검사를 받고 입원하신 후 그곳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채 한 달을 채우지 못한 시간이었다.
그 일로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았다. 생과 사의 갈림길이 종이 한 장보다 얇다는 걸 느낀 것이다. 이후 어머니는 감기나 치아 치료, 안과 등 겉으로 드러나는 병을 치료할 때가 아니고는 병원엘 가지 않았다. 건강검진을 받아보라고 해도 검사를 해서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병까지 알 필요가 뭐가 있냐며 거절하셨다. 어머니에게 건강검진은 모르면 약이 될 수 있는 일을 알게 하여 병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몸에 본인이 알아치릴 정도의 이상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며 주변 관리를 잘하셨다. 건강을 위해 음식을 잘 챙겨 드셨고, 정갈하게 씻었으며, 방청소며 정원 손질도 야무지게 하셨다.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노래 가사를 외우고, 손을 놀려 그림을 그렸으며, 컴퓨터에서 카드 맞추기도 하셨다. 운동을 목적으로 방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정원에서 무언가를 하며 지내는 시간을 즐겼다.
그런 어머니께서 활기를 잃기 시작한 건 작년 12월 무렵이었다. 그때 우리는 몸이 아파 그럴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채, 어머니도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이상 행동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급기야 남편이 잠자리를 어머니 방으로 옮겨 상태를 살폈다. 어머니는 자주 주무셨고, 종종 헛것을 보셨다. 처음에는 눈에 이상이 있어 그런 것인가 싶어 안과엘 갔었다. 안과에서 나이가 들면 간혹 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기에 우리 또한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되는 안과 치료에도 별다른 차도가 없자 체력이 약해져 그런 것일 수 있다 생각해 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으려 했다. 그때 아주버님께서 건강검진을 제안하셨다. 평소 어머님께서 무용함을 피력했던 바로 그 건강검진이다. 이번엔 어머니도 고집을 피우지 않으셨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증상에 본인 또한 거부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의 불안한 병원행이 성사되었다.
어머니께서 병원에 간 날 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께서 멀쩡해지셨다는 것이다. 설마, 어머니께서 집에 빨리 오고 싶어 멀쩡한 척하신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간단한 치료 하나로 건강을 되찾았다. 어머니의 병은 건강검진만 잘 받았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런 병이었다. 주변에서 많이들 얘기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질병, 당뇨였다.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어머니의 혈당지수가 너무 높아 이상 증세의 원인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한다. 어머니에게는 인슐린 주사가 투여되었고 이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당뇨는 나이 구십에 난데없이 찾아온 불청객이긴 했지만 약으로 치료가 가능한 병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이틀 동안 다양한 검사를 받고 삼일째 되는 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병원에 다녀오신 후 어머니에게는 큰 변화가 생겼다. 건강검진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바뀌었고, 잘 먹어야 건강하다는 생각에 자주 드셨던 간식의 양이 줄었다.
이번 병원행은 어머니에겐 큰 병이 아니었기에 불행 중 다행이었고, 우리에겐 건강을 돌아보게 한 고마운 일이었다. 어머니의 당뇨 사실을 몰랐다면 우리는 여전히 배가 부르도록 음식을 남용했을 것이고, 입에 달고 좋아한다는 이유로 달달구리 음식을 겁도 없이 섭취했을 것이다. 몸이 아픔을 호소하기 전까지 먹고 또 먹으며 입안의 행복을 즐겼을 것이다. 음식들이 우리 몸을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은 채로.
우리는 종종 건강검진을 내가 가진 권리쯤으로 생각하여 행사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하려 한다. 하지만 건강검진은 권리로서가 아니라 의무로서 행사되어야 하는 국가적 정책이다. 더 큰 병이 발생하기 전에, 더 나아가 나와 나의 가족 모두를 위해 건강검진을 꼭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