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배우고 익히는 걸 좋아해 그것들을 즐기며 산다. 학생이란 신분이 단순하게 지식을 습득해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 자체를 배우는 사람이란 걸 알기에 평생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서 죽은 후에나 갖게 된다는 직책 '학생부군신위'에서의 '학생'이란 신분이 내 이름 앞에서 부끄러운 이름이 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지금 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는 일을 하는 학생이다. 그렇다고 학교를 다니는 건 아니다. 다만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있으니 학생이라 부를 뿐이다. 그동안 우리는 제도권에서 배우는 공부만을 공부의 전부라 여기며 살았는지 모른다. 학교를 졸업하면 배운 것을 토대로 생활할 수 있으니 더 이상의 공부가 필요 없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공부를 제대로 알지 못해 할 수 있는 편협한 생각이었다. 공부는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할 때도 해야 하고, 퇴직한 후에도 해야 한다. 심지어 나이 들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할 때에도 해야 한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처럼, 배움의 시기에도 끝은 없다. 어쩌면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요 며칠 나이에 상관없이 배움을 실천하고 있는 분들을 봤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평생교육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당장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앞으로 쓰임이 있을지 모르니 그저 준비나 해 두려는 의도로 시작한 일이다. 작년 학기에는 직장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들었는데, 이번 학기엔 실습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오프라인 수업을 들어야 했다.
오프라인 수업 첫날, 걱정이 많았다. 내가 이 분야의 공부를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젊은 사람들 틈에서 잔뜩 주눅 들어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강의실로 들어섰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그곳에 앉아계신 분들이 대부분 나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자기소개 시간에 받은 충격은 강의실에 들어설 때의 두 배였다. 소개하는 분들의 외모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여 놀라웠고, 무언가에 도전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은 나이에 다시 한번 놀랐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생각해 왔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공부 시기에 한계선을 긋고 있었던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면 공부의 시기가 60이면 어떻고, 70이면 어떻겠는가? 그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평생교육을 실천하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지난주, 또 다른 분의 글을 읽고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글을 쓰고 계시는 이숙자 작가님https://brunch.co.kr/@sukja44의 글이었다. 평소 그분의 글을 읽으며 나 역시 작가님의 나이까지는 글을 써야지 다짐하곤 했다. 작가님은 80이 넘어서도 꾸준히 글을 쓰고 계시는데, 며칠 전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는 소식까지 전하셨다. 누군가에겐 그 나이에 뭣하러,라는 생각이 들 일인지 모르지만 난 작가님의 마인드가 존경스러워 흐뭇하게 미소가 일었다.
살아가다 보면 말은 쉬운데 행동이 어렵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이론은 그럴싸한데 실천 앞에서는 주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늘 해왔던 것처럼. 큰 기대 따위는 바라지 않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그런 사람들 뒤에서는 행동하는 것이 쉬워진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생긴다.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다가도 이 나이에 무슨, 하는 생각에 의욕을 잃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힘이 되어 준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지금 하는 일이나 잘하지 뭐, 했는데 언제 어디서 기회의 손이 다가올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젊을 때 준비해 둬, 라며 힘을 실어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알게 모르게 힘이 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의 앞날이 앞마당에 핀 봄날의 꽃처럼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비가 내리는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빛나는 모습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