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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Mar 19. 2024

이상하지. 날이 더워지면 매운 비빔국수가 생각나는 게

가끔은 자극적인 맛을 먹고 싶어

9결혼을 하게 되면 양보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여러 면에서 가족구성원의 입장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많이 신경 쓰이는 부분은 매일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맵찔이를 만난 경우는 무척이나 심각하다. 이럴 때는 라면 하나를 사더라도 매운맛과 순한 맛 두 가지를 고루 사야 한다. 불닭볶음면 같은 건 맵찔이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 음식이니 주의해야 한다. 그의 눈에 불닭볶음면을 먹는 맵당당이는 고통을 사서 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일 테니까.


거기다 일반적인 조리법으로 요리를 하지 않고 매운맛에 익숙한 내 식성에 따라 요리를 하면 이 또한 문제가 된다. 그 음식은 이해할 수 없는 음식이 되어 외면을 받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시금치를 무칠 때 김밥에 넣는 것처럼 소금과 참기름으로 양념해서 푸릇푸릇하게 무치면 되는데, 새콤달콤한 초무침을 좋아한다 해서 시금치를 초고추장에 버무려버리면 문제가 된다. 젓가락이 다가서다가도 발길을 돌린다. 이런 경우는 참으로 민망하다. 그건 마치 나 혼자 먹겠다며 음식을 한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라도 삶고 버무린 수고가 있는데 손을 대지 않고 있으면 '먹기 싫으면 먹지 마. 나 혼자 다 먹을 테니까'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러다 또 미안해진다. 그러니 음식이란 건 늘 평범하게 만들어 나와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야 했다.


그럼에도 먹고 싶은 음식을 포기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음식이 머릿속을 빙빙 돌며 지워지지 않을 때다.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더욱 강력해진다. 보통 이런 일들은 먹방을 본 후 발생한다. 가끔은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발생하기도 하고. 그럴 때는 맛있게 먹고 있던 모습을 숟가락으로 연두부 도려내듯 깔끔하게 도려내버리고 싶다. 생각을 지울 줄 모르는 머리를 한 대 때리고도 싶다.


그래서 먹방이 싫다. 먹방은 건강해지겠다고, 살 좀 빼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의 의지를 드릴로 후벼판다. 쉽게 구멍을 낸다. 그런데 보고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비빔국수를 입 안 가득 넣고 오물거리는 먹방을. 그 모습이 머릿속을 타고 들어와 눈, 코, 입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그래, 먹자. 남편이 안 먹는다면 어머니를 꼬시자. 정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남편에게는 잔치국수를 해주면 되지. 마침 다이어트를 위해 구입해 둔 채소도 많다. 썰어둔 양배추도 있고, 무쳐놓은 콩나물도 있다. 오이는 채 썰면 되고, 브로콜리는 살짝 데치기만 하면 된다. 고추장에 다진 마늘과 파를 넣고, 새콤한 매실액에 설탕을  더하자. 새콤함이 좋다면 식초를 넣어도 좋고. 깨소금에 참기름까지 더하면 양념장은 금방 완성인 걸. 그리고 국수를 삶아 박박 씻은 후 물을 빼고 양념장과 채소를 넣어 버무리면 끝이다. 별 것도 아닌 걸 특별한 것처럼 머리에 담아둘 필요가 없다.

국수는 삶아 박박 문질러 꼬들꼬들하게
비빔국수를 완성한다

이상하게 날이 더워지면 매운 비빔국수가 당긴다. 겨울에 잘 생각나지 않던 음식이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것이다. 그럴 때는 그냥 먹자. 국수를 사가지고 와 집에 있는 야채와 양념으로 만들어 먹어도 좋고, 식당으로 달려가 먹어도 좋다. 나른 한 오후,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콧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게 매운 국수를 먹어보자.


그렇게 날 좋은 어느 봄날,

난 남편이 싫어하는 매운 비빔국수를 먹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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