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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Feb 29. 2024

내 생일에 눈물을 보이신 시어머니

오래 살아 미안하다고

나를 낳아준 엄마와 29년을 살았고, 남편을 낳아준 어머니와는 26년째 살고 있다. 엄마와는 가끔 전화하고 어쩌다 만나지만 어머니와는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눈다.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 엄마와 보낸 시간보다 어머니와 보낸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다. 비록 시간의 길이로 천륜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인위적 관계 또한 천륜의 깊이만큼 깊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 하곤 한다.


어머니와 나와 같은 관계를 사회에서는 고부관계라 부른다. 고부는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아우르는 말로 우리 사회에선 오랫동안 갈등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온 사이다. 고부관계가 우스운 건 누구 하나 모난 사람이 없어도 이 테두리 안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서로가 서로에뾰족한 모서리가 된다는 것이다. 자신은 분명 모서리가 아닌데 다른 사람을 찌르고 있는 걸 발견하면서 말이다. 그동안 이 평범한 진실을 잊고 살았다. 성격이 둥글다 못해 얼굴까지 둥근 내가 누군가를 찌를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나 역시 누군가의 모서리가 되었던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몇 년간은 엄마가 내 생일을 챙겨주었다. 긴 시간 나를 키우며 기억했던 날에 몸이 저절로 반응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엄마는 더 이상 내 생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나의 생일 따위는 진즉에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심지어 생일이 지난 이 시점에서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말해도 엄마는 '아, 봄이 올 때쯤이 너 생일이었지. 축하한다, 딸.'이라고 말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어머니는 다르다. 어머니는 의식적으로 내 생일을 기억하신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은근슬쩍 생일에 표시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기억을 하시고는 아무도 모르게 부엌으로 들어와 봉투 하나를 쥐어주셨다. 얼굴에는 미소를 가득 담은 채로 말이다. 


"막내야, 생일 축하한다. 그리고... 고맙다."


어머니는 축하한다고 말을 하고 잠시 말을 멈췄다. 어렵사리 고맙다는 말을 끝낸 후에는 급기야 눈물을 보이셨다. 서러운 아이처럼 소리까지 내셨다. 무슨 일인지 몰라 당황하는 나를 끌어안고는 또 그렇게 한참을 우셨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적잖이 놀란 나는 품에 안긴 여린 몸을 다독여야 했다. 흐느낌이 진정되었을 때 어머니는 빨개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두 손을 감쌌다.


"막내야, 미안하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것 같아서 너한테 정말로 미안하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아니,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나도 다 안다. 시부모 모시고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정말이지... 나도 나 자신이 이렇게 오래 살 줄은 몰랐다. 자식들에게 피해가 되는 사람으로 살지 않으려 나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자꾸 나이를 먹으니 이제는 그렇게 될 것 같으니 무섭고 두렵다. 네가 이렇게 나이 먹는 걸 보면... 또 내가 더 늙은 것이 느껴지고."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건강하시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건강하실 거니 너무 걱정 마시고 마음 편하게 사세요."


어머니를 위로하듯 말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어머니께서 나의 눈치를 보고 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자존감이 높으신 분이 세월 앞에서 많이 약해지셨다. 우리가 고부관계로 보낸 시간이 어머니께서 생각하신 시간보다 길어졌나 보다.


삶이 이토록 아프다. 그래서 슬프다. 나이 든다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 미안한 일이 될 수 있겠는가. 삶의 끝을 마음대로 결정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나 할까. 누군가는 몸이 아프면 혹시라도 오래 살지 못할까 걱정을 하는데, 누군가는 몸이 아프면 죽지 못할까 봐 걱정을 한다. 죽지 못하고 아픈 몸으로 살아갈까 봐 걱정을 한다. 피해가 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은 탓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존재는 없다. 그럼에도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그 바람을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알았다. 26년의 세월은 어머니를 나약하게 만들었다. 남은 날들이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미래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할 수는 없다. 내 생일에 임무 하나가 주어졌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머니의 오늘이 내일보다 더 행복한 하루가 되게 만드는 일이다. 오래 사는 것이 미안한 일이 아니라 행복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하는 일이다. 흔하디 흔한 말 '오래오래 사세요'가 짐이 되는 말이 아니라 축복의 말이 될 수 있도록.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임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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