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사람이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정해진 시간에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게으름이란 게 도드라져 보이니 말이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난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다. 성격이 느긋하긴 했어도 어질러진 모습을 못 본 탓에 주변 정리는 깔끔하게 하고 살았다. 그런데 부지런함의 수치가 과도하게 높은 사람과 살다 보니 나의 느긋함은 어느덧 게으름으로 하향평가 되었다. 거기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나를게으르다고 말하는 통에 게으르다는말은 나를 규정짓는 말이 되고 말았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짐작했을지 모르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울 엄마다. 엄마가 나를 게으르다고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엄마는 본인의 딸이 게을러서 음식 만드는 걸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니 음식을 못해도, 맛이 없어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는 의도로 저 말을 했다. 그런데 상황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행간의 의미도 읽지 못한 남편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다. 심지어 남편의 귀에는 음식이란 말 대신에 게으르단 말이 더 깊게 꽂혔다. 이후 남편은 내가 조금이라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게으르다는 말로 나의 기를 눌렀다. 장모님이 딸을 제대로 봤다며 의기양양해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남편이 사람 사이의 관계어를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했으면 자신의 딸을 게으른 사람으로까지 만들면서 말하고자 했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장모가 딸에게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말을 굳이 해야 했던 이유를 짐작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남편의 비아냥 속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 나는 전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 게으름에 대해서만큼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남편 덕에 나 자신을 변화시킨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남편의 입에 달린 게으르단 말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다만 그 빈도가 낮아져 어쩌다, 아니 가뭄에 콩 나듯, 그 어휘의 존재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요즘엔 새벽에 일어나 2시간씩 공부를 한다. 의도적으로 계획한 일이다. 토요일 오전 수업이 있는 날과 늦잠이 허락된 일요일은 제외한다. 2시간 동안에 하는 공부는 독서와 필사, 영어공부다. 공부 시간도 세분화해 독서를 위한 시간은 1시간, 필사 30분과 영어회화 30분으로 배정했다.
필사하기- 나의 필사는 주요 내용을 적는 초록이다.
깜지 쓰기- 깜지 쓰기가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난 끄적이며 외우는 게 익숙하다. 가끔은 공책에 구멍 나도록 깜지를 쓴다.
공부를 할라치면 굳이 새벽 시간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부지런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편 앞이라야 한다. 매일 포기하지 않고 무엇인가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새벽마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공부를 하는 것은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고, 내가 점점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게으른 나 자신을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표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나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말한 남편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 덕분에 좋은 습관들이 생겼다. 새벽 공부도 그렇고, 저녁 운동도 그렇다. 습관이 되니 하루라도 행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처럼 불안한 마음마저 든다. 행복한 고민이다. 이런 남편에게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