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가는 쉬운 게 아니다.

분가 이야기 1탄.

by 은빛구슬
동서, 분가해.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서, 아파트 알아봐"


형님네가 시댁으로 들어오겠다는 말이다. 아주버님께서 이곳 대학으로 오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느 정도 예측은 했었다. 그런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아... 네. 알겠어요. 근데 형님, 괜찮으시죠?"

"뭐 그렇지. 그동안 동서가 고생이 많았네"


기분이 묘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테니 그 자리를 비워주라는 의미 같기도 했고,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제는 맘 편히 살아보라는 말 같기도 했다. 서운함과 홀가분함이 마음속에서 들락날락 방정을 떨었다.


사실 나의 시집살이에는 계약 기간이 존재했다. 남편은 그 기간을 2~3년 정도로 보았다. 타 지역에서 근무하시는 아주버님께서 이곳으로 오시게 되면 그 계약은 끝나는 걸로 되었으니. 그런데 2~3년이라는 기간이 8년을 넘어서면서 나는 그 계약에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저 가능성이 존재하는 기간일 뿐 현실의 시간은 아닐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날이 드디어 왔다. 형님의 저 전화와 함께 말이다.


일찍이 시아버지께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큰 아들인 아주버님의 것이라 못 박으셨다. 그래서 우린 언젠간 들어오실 형님네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여 형님의 전화는 당연한 것이었고, 나와 남편은 우리가 살 집을 알아보는데 부담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분가 준비는 시작되었다. 평일에는 저녁을 먹고 차로 여러 동네를 돌며 적당한 장소를 찾았고, 토요일에는 공인중개소를 찾아 집 구경을 다녔다. 아파트는 평수가 작더라도 환경은 좋은 곳이어야 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아파트를 알아보던 우리에게 아버님께서 불쑥 형님네도 아파트를 알아보라고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버님께서 형님네가 시댁으로 들어오는 걸 막으셨단 얘기다. 왜인지 묻고 싶었다.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 여자의 감이라는 건 촉을 세우지 않아도 느낌이 온다.


형님네가 들어오시지 않으신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두 분만이 사시게 되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누군가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을 테니.


남편은 아버님께 왜 형을 못 들어오게 했냐고 물었다. 아버님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싶으니 각자 자기가 살 집이나 알아보라는 말씀만 하셨다. 아주버님께도 전화를 했다. 아주버님께서도 아버님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셔서 서운하셨다면서 어쩔 수 없이 집을 알아본다는 말씀을 하셨다.


남편은 아주버님을 들어오지 못하게 한 아버님께 화를 냈고, 아버님 말을 거역하지 않은 채 집을 알아보고 있는 아주버님께도 화를 냈다. 그리고 나에겐 아버님의 말씀은 절대 진심이 아니라는 말을 연거푸 하다 마침내 집 보는 일까지 멈추었다. 아버님과 어머님 두 분만 두고는 절대 나갈 수 없다면서 말이다.



분가는 쉬운 게 아니었다.

불똥은 엉뚱한 데서 튀었다.


"그냥 우리가 이대로 살자. 저 두 분만 두고 어떻게 나가냐?"

"그래도 아버님께서 집을 알아보라고 하셨잖아요?"

"넌 그 말이 진심으로 들리냐? 아버지께서 우리 생각해서 하신 말씀이잖아. 그 말 절대 진심 아냐"

"그럼 정말로 집은 안 알아봐요?"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흐물거리는 낙지처럼 땅바닥에 달라붙을 것 같았다. 상황 판단을 할 이성은 내가 보러 다닌 어느 집 한 귀퉁이에서 잠이 들었는지 작동하지 않았고, 본능처럼 몸에 붙은 감성만 내 몸을 통제했다. 대책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이게 아닌데 싶은데도 눈물이 쏟아졌다. 여기서 눈물을 쏟아내는 건 분가를 하지 못해 억울하다는 의미인데... 그건 그동안 참고 지낸 나의 인내를 뭉개버린 행위인데...


남편은 내 눈물을 못마땅해했다. '그래 넌 그런 마음으로 살았어' 라며 비웃는 거 같았다. 남편의 말을 듣고 난 말을 잃었고, 웃음도 잃었다. 어쩌다 던진 물음에만 대답을 했을 뿐 먼저 나서 말을 걸진 않았다.


식사 시간에 아버님께서 집은 잘 알아보고 있냐고 물으셨을 때도 눈치 없는 눈물은 흘렀다. 내 의지완 전혀 상관없이 말이다. 내 눈물에 놀란 아버님과 어머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고 남편은 도저히 아버님, 어머님만 두고 나갈 수 없다는 자신의 생각과 결정을 말씀드렸다. 완강하게 거부 의사를 보일 거라 생각한 아버님께선 생각을 해 보자는 말씀으로 여지를 남기셨다. 남편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 후 아버님께서 우리를 불러 그대로 살아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께서 말씀은 않으셨지만 우리가 집을 보러 다니는 동안 불안해하며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셨다면서 말이다. 남편이 그렇게 말을 해 줘서 고마웠다고까지 하셨다.


그렇다면 아버님과 어머님은 왜 아주버님이 들어오신 걸 막으셨던 걸까? 자식들과 살고 싶으셨다면 아주버님을 받아들이셔야 하지 않는가? 설마 우리와 살고 싶으셔서 그러셨다고? 그건 또 아닐 것이다. 우리가 뭘 얼마나 잘했다고.


분가하고 싶으면 혼자 나가


형님의 전화가 날 흔들지만 않았어도 난 그런대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흔들렸다. 멈추려면 흔들린 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난 웃지 않았고, 말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찼다. 나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그 시간이 남편을 숨 막히게 만들었나 보다. 남편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폭발했다.


"분가하지 못한 게 그렇게 불만이야? 그렇게 나가고 싶으면 애들 데리고 혼자 나가. 집 알아봐 줄 테니, 거기 가서 살라고. 난 여기서 절대 안 나가"


남편으로부터 저런 말을 들었다면 다들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난 그때도 울었다. 바보같이 울기만 했다.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해? 나와 애들이 그렇게 가치 없는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왜 자꾸 인상을 쓰고 다니냐고? 어머니, 아버지가 불편해하시는 거 안 보여?"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 눈물이 나는 걸 어떡해?"


그렇게 나의 30대는 눈물과 불투명함으로 인생이 범벅이 되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되었다. 예전처럼.


하지만 우리의 삶이 살만한 것은 어둠과 빛이 공존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란 말처럼.


그럼 다음은 빛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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