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 덕에 텔레비전에 나왔어요.

나의 텔레비전 출연기

by 은빛구슬
입덧에 절망하다.


사람은 자신이 무능하다 느낄 때 한없이 좌절한다. 그러나 그에 반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전에 없던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임신 후 나를 무력화시킨 입덧으로 삶의 의욕을 잃었다. 임신만 하면 벼슬한 사람처럼 대접을 받고 좋은 것만 보며 좋은 것만 먹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입덧은 나를 끝없는 나락으로 끌어내렸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나에게 임신은 영예와는 거리가 삶의 불청객이었다. 그 잘난 입덧 하나로.


나는 아래로 아래로 침전해 갔다. 점점 세로로 서 있는 시간보다 가로로 누워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었다. 나에게 축복을 안겨주며, 내 몸이 한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위대한 몸이라는 것을 알려준 아이는, 나의 절망으로 인해 축복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억울함을 당해야 했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나에게 축복으로 다가왔으니 나 역시 그 아이를 축복해 줘야 마땅하거늘 그러지 못함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나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입덧을 이겨내야 했다.


태교를 시작했다. 아이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다른 돌파구가 필요했다. 태교의 첫 단계는 음악이었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태교 음악. 그런데 음악이 나와 맞지 않은 것인지 나를 더 가라앉게 만들었다. 차선책이 필요했다. 두 번째 단계는 독서였다. 아이구야, 자꾸 졸음이 쏟아졌다. 임신을 하면 잠이 많아진다는 말을 책을 읽으면서 실감했다. 독서까지 나와 맞지 않는단 말인가? 좀 더 적극적인 태교법이 필요했다. 책을 읽다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눈으로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상식책을 외우고 신문을 읽었다. 공책에 내용을 적고 암기도 했다. 태교는 아이를 위한 교육이니 내가 공부하면 아이도 똑똑해질 거란 생각에 더욱 집중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틀렸다. 나의 공부가 부족했던 탓인지 내 아이의 능력 부족인지 아이는 자라는 내내 나의 잔소리를 들었으니 말이다.


용기 있는 도전

공부를 하다 난데없이 욕심이 생겼다. 갑자기 나의 실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당시, 그러니까 20년 전에는 우리나라에 퀴즈 열풍이 일고 있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MBC 퀴즈 프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KBS 퀴즈 프로, 주부를 대상으로 SBS 퀴즈 프로.


방송사마다 퀴즈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나라에 지식을 전파하라는 거창한 임무라도 계시 받은 듯 퀴즈 프로의 깃발을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한때 기자를 꿈꾸며 언론 고시라 불리던 공부를 했던 나는 그동안 닦은 실력을 믿으며 퀴즈 프로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선택은 내가 무식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본다. 무식이 아니었다면 내갸 그리 용감해질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선택한 프로는 주부를 대상으로 한 SBS의 '도전 퀴즈 퀸'이었다. 인터넷 시험을 통해 예선을 치르고, 서울에 올라가서 본선 시험을 봤다. 운이 좋았던지 본선에 통과하면서 방송 출연 날짜가 잡혔다. 날짜는 출산 후가 될 거 같았다.


공부는 계속되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은 모두 공부하는 시간으로 할애했다. 우스운 것이 있다면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자는 시간이 더 길었다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남편과 일산에 있던 SBS 방송국으로 갔다. 떨지 않으려고 했는데 대기실에서 녹화되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은 안드로메다행이었다. 우황청심환을 먹었는데도 심장은 발광을 했고, 발은 구름 위를 걷는 듯 힘이 빠져 흐느적거렸다. 어떻게 녹화를 했을까? 꿈속을 헤매듯 멍한 상태에서 문제를 맞혔다. 그리고 상금도 받았다. 그 와중에 남편은 인터뷰까지 했다.


나의 방송 출연은 임신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의 무능을 깨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무기력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발버둥 치며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결핍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나는 내 자신이 무능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보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나의 마음은 다른 사람들에겐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방송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아버님의 첫마디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앞으론 그런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네 엄마가 하루 종일 애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애엄마가 애기를 두고 어디를 쏘다니냐"


어머님의 표정 또한 냉랭했기에 남편과 난 죄송하단 말을 하고 아이를 안고 우리 방으로 왔다.


단 하루였다. 부모님께 나의 존재는 본인들을 피곤하게만 하지 않으면 족하는 존재였다. 나의 발전과 성장 따윈 나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나만의 문제였다. 서운했지만 그럼에도 난 좌충우돌 나의 텔레비전 출연 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 인생에 언제 또 그런 용기가 찾아올까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또 다시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그때처럼 용감해질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장담할 수 없다'이다. 하지만 나를 증명하고 싶어 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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