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 누군가 읽을 것이다. 우리는 쓰고 읽는 행위를 통해 타인의 생각과 삶을 엿본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누군가는 나의 생각과 삶을 엿보고, 난 다른 이의 글을 읽고 그의 삶과 생각을 엿본다. 서로를 주고받는 즐거운 행위다. 간혹 그 글이 생경하거나 은밀하다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렇듯 몰래 엿본다는 것은 짜릿하면서도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몰래 엿보기의 정수는 뭘까? 난 그것을 도저히 알 수 없는 미래를 엿보는 일에서 찾았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이 만들어낸 결과로써의 미래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우주의 원리로 얻어낸 미래 같은 거 말이다.
난 지금 우주의 원리로 풀어낸 미래를 이야기하려 한다. 사주로 풀어낸 나와 남편의 궁합 이야기로.
최고 궁합의 비밀
어머니께서 사주로 나와 남편의 궁합을 보고 오셨을 때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소개로 만난 만남에다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상황이었기에 어떤 결과가 나온다 한들 아쉬울 건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이지 결과는 나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우리의 만남은 계속될 수 있었다.
그때 나에겐 의문 하나가 생겼다. 사주로 풀어낸 궁합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들은 어떤 근거로 그런 결과를 도출해 낸다는 것인가? 사주란 자신의 삶을 운명에 기댄 나약한 사람들의 마음 한 귀퉁이를 살짝 건드리는일이니 그들과의 대화만으로도 그 답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건가? 어쨌든 그런 의문을 품게 되면서 나에게 그 모든 걸 알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걸 꽉 잡아 반드시 비밀을 밝혀내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그 기회란 것이 그리 오래지 않은 시기에 날 찾아왔다. 큰 형님이 타지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알아보고 싶은 일들이 생긴 것이다. 어머니의 궁합이 나의 결혼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쳤다면 큰 형님의 결혼에는 그보다 더 큰 영향을미쳤을 것이다. 그러니 6개월보다 빠른 3개월의 만남으로 결혼을 할 수 있었지. 아마도 형님 역시 최고의 궁합이란 어머니의 선물을 받았을 것이다.
형님이 어머니에게서 철학원의 주소를 받고 위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을 때 나는 누군가 나를 그들의 대화 속에 끼워주길 바라며 짧은 목을 잡아 빼며 설명을 엿듣고 있었다.
"동서, 나랑 같이 갈래? "
나를 구원해주겠다는 말이다.
"그래, 막내야. 너도 같이 갔다 와라. 니 형님 혼자 쑥스러울 거다"
나보고 형님을 구원하라는 말이다.
'오호, 횡재로구나. 그럼요. 그래야지요. 드디어 나도 점집인지 철학원인지 알 수 없는 그 의문의 장소에 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되었구나. 내 반드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내어 최고의 궁합이란 네 놈의 정체를 밝혀내고야 말 테다. 푸하하하.'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찾은 철학원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했다. 그건... 그냥 2층의 보통 가정집이었다. 1층은 살림집으로 쓰는 듯했고, 2층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집 옆구리에 달라붙은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도착한 거실에는 몇몇의 사람이 긴 소파에 앉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를 찾았다. 병원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순서를 기다렸다. 침묵이 깊어 숨소리조차 조절해야 했다. 우리 순서가 되어 형님과 함께 들어가니 방에는 이미 한 분이 더 계셨다. 상담은 그분 먼저였다. 그분은 나이가 지긋한 노신사였는데, 담임 앞에 불려 간 학생처럼 사주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계셨다. 갑자기 그 연세에 알고 싶은 미래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재밌게도 그 방의 구조는 비밀을 보장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뒷사람은 앞사람의 상담 내용을 들을 수 있었고, 나 역시 그 할아버지의 상담 내용을 들었다. 그 할아버지는 82세의 연세에 가족묘를 조성하고 싶어 하셨다. 그런데 그것을 완성하지도 못한 채 돌아가실까 봐 걱정이 되신 것이다. 상담 내용은 간단했다. 85세까지는 거뜬하게 사시니 그 일을 시작하셔도 된다는 것. 할아버지는 85세까지 거뜬히 산다는 말에 기쁜 것인지 아님 묘지를 조성해도 된다는 말에 기쁜 것인지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우리 순서가 되었다. 형님이 아주버님과 형님의 태어난 날과 시간을 내놓으셨다. 어머니께서 김사주라 부르시는 그분은 그 날짜를 보고 책을 펼치시더니 알 수 없는 한자를 나열하기 시작하셨다. 내가 한자에 약한 탓인지, 그 한자가 암호라도 되는 것인지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한자를 다 쓰고 나서 그것을 보고 내용을 풀어주셨다. 그 누가 우리의 정보를 준 것도 아닌데 많은 부분이 일치하고 있었다. 형님은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묻고 답을 얻어내셨다. 그 답은 굉장히 신뢰성이 있어 이후에도 형님은 철학원을 몇 번 더 찾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차례가 되었다. 흥분되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내 생전 이런 곳을 방문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낯선 곳에 글자 몇으로 나의 앞날을 내다본다는 곳에 이미 와 있었다. 그분은 나를 보자마자 인상이 좋다고 하셨다.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내가 내민 날짜를 보고 또다시 한자를 적기 시작하더니 풀어낸 내용을 받아 적으라고 하셨다. 나는 정신없이 받아 적었다. 많은 내용이 적혔다. 우리에게 좋은 방향과 나쁜 방향, 맞는 띠와 맞지 않는 띠, 주의해야 할 일과 음식, 최고의 운이 찾아오는 해 등등.
그런데 남편과 나는 서로 주의해야 할 띠에 포함되어 있었다. 남편은 나와 같은 띠를 피해야 했고 나는 남편의 띠를 피해야 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둘은 최고의 궁합이란 말을 들었다. 그랬기에 이곳을 올 때도 난 부담 없이 정해진 답을 확인이라도 하듯 찾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피해야 할 띠를 가진 두 사람의 만남이라니.
그분은 그런 결과를 내놓으시면서 나에게 남편을 참 잘 만났다고 감탄하셨다. 어디서 이런 천생연분을 만났냐면서 말이다. 나는 시원찮게 웃으며 우리 둘은 서로 맞지 않는 띠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분의 말씀인즉,
내가 다른 여자에 비해 기가 굉장히 세기 때문에 남자를 잘못 만나면 그 남자에게 큰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옛날 못된 시어머니들이 자식이 먼저 죽으면 며느리가 자식을 잡아먹었다고 탓하는 그런 일 말이다. 그런데 남편의 기가 워낙 세서 나의 센 기를 다 받아준다는 것이다. 고로 이 사람을 못 만났으면 내 인생은 큰일 날 뻔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천생연분은 없다란 것이다.
'아이고야, 하마터면 내가 남편 잡아먹는 여자가 될 뻔했었구나.'
철학원을 나오면서 형님은 날 보고 기 센 여자라고 놀리셨다. 그러나 맹세컨대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내가 기가 센 여자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어찌 되었건 기 센 남편과 나는 천생연분이 되어 지금까지 부딪치고 깨지면서 둥글둥글하게 깎여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가장 위로가 될 시기를 맞이하려 한다.
노년이 최고로 좋다
나는 초년과 중년의 운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노년운은 더없이 좋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맞는 말인지 모른다. 초년에 아빠를 잃었고, 중년? 중년은 뭐... 몸이 고되지는 않았지만 합가로 인한 맘고생이 만만하지 않았으니 애써 짜 맞추자면 그럴 수도 있다.
다가올 노년, 나이로나 마음으론 받아들일 수 없지만 철학원에서 들은 노년이란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그거 하나를 바라보고 꿋꿋이 살아야 하나 보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주역은 거대한 빅데이터가 만들어낸 우주적 결과물이란 말을 들었다. 그들이 풀어낸 사주의 결과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게 아니라는. 그러나 명심해야 할 건 사주는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니 좋지 않은 내용이면 주의하면 되는 것이고 그 내용이 좋으면 긍정의 마음으로 세상을 밝게 밝게 웃으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비록 나와 남편의 궁합이 좋은 의미로 최고는 아니지만 둘도 없는 천생연분이라니 티격태격하면서라도 끝까지 살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