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이이익~
가방 안에서 삐삐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수줍은 색시처럼 다소곳이 내 옆을 지키고 있는 가방을 타고 미세한 떨림이 전해진다. 울림은 계속된다. 투명한 공기를 뚫고 달리다 벽에라도 부딪쳤는지 다시 돌아와 내 귀에 꽂힌다.
"선생님, 삐삐! 전화하고 오세요."
책상에 엎드려 문제와의 전쟁을 벌이던 아이가 잠시 휴식이라도 취하려는 듯 고개를 들어 티브이 옆 전화기를 가리킨다.
'소리는 내 귀에만 꽂히게 아니라 이 녀석 귀에도 꽂혔구나. 그래, 숨소리조차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네가 이 소릴 듣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알고 있어. 신경 쓰지 말고 어서 풀어"
무심히 한마디를 던져놓고 가방을 열어 번호를 확인했다. 이쪽 지역의 번호다. 학부모 전화가 분명하다. 아이에게 쉼이라도 주려면 당장 전화기를 들어 통화를 해야겠지만 학습을 그만두겠다는 식의 난처한 내용이면 전화기를 든 내가 더 난처해진다. 수업을 끝내고 공중전화에서 전화하기로 결정한다.
공중전화부스로 가는 내내 생각했다. '그분이 왜 전화를 하셨을까? 휴회하실 분은 아닌데...'
당시 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교육을 한다는 어느 학습지 회사의 방문교사였다. 20년 전이다. 사회초년생이던 내가 선생님이라는 문구 하나에 혹해 선택한 나의 첫 직장은 비참하리만큼 가혹했다. 나는 내 자신이 교육을 하는 사람인지, 영업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시스템 속에서 헤매야 했다. 아이들의 교육과 함께 회원확보라는 돌덩이 업무에 시달려야 했기에 학습 중단이란 통보는 나에게 적잖은 스트레스가 되고 있었다.
신호가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전화를 받는다. 내 전화를 기다렸다는 뜻이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여보세요?"
"아, 00어머니 제가 수업을 하고 있어서 전화가 좀 늦었네요."
무슨 일이 있어도 목소리만큼은 밝고 명랑해야 한다. 그런데 나의 이런 대답과 달리 저쪽 반응이 영 시원찮다.
"저...선생님,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싶은데... 실례가 안 된다면 뭘 좀 여쭤보려고요?"
명확한 내용도 없이 주저하는 태도에 당황했다. 진정 저분은 나에게 학습 포기라는 휴회의 고통을 안겨주시려는가?
"네, 괜찮아요. 어머니, 말씀하세요"
"선생님, 혹시... 남자 친구 있으세요?"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일단 '휴회는 아니다'란 안도감에 한숨을 돌리고 전화를 받았다.
"아니, 그건 왜?"
"그게..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좋은 사람이 있어서 선생님께 소개해드릴까 해서요"
"아~, 네, 지금은 없는데요"
남자 친구가 필요하단 생각은 않고 살았다. 그런 생각이 압도적이었다면 저런 대답을 해서는 안 된다. 대학을 다닐 때 누군가가 저런 질문을 할 때면 늘 남자 친구 있다는 말로 거절을 했다. 나로선 최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날, 나는 무심결에 저런 대답을 하고 말았다. 저 대답은 남자 친구를 소개해 달라는 긍정의 의미와도 통했다. 그 후 계속되는 질문에 난 생각 없는 로봇처럼 따박따박 대답을 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나를 굳게 만든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살아계시죠?"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질문이었다. 저 질문은 성인이 된 후에도 날 아프게 했다. 적응이 되지 않았다. 태연하게 "아빠는 돌아가셨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는 것일까? 늘 궁금했다. 그런데 그런 아픈 질문을 이 상황에서 다음 주면 또 얼굴을 마주하게 될 학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
'괜히 거절하지 않았구나' 후회가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무슨 대답을 하고 있었던 거지?' 허탈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죄인이 된 것처럼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밝혔다. '제가 당신이 원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 사람이었네요'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아, 네..."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학부모는 급 어색해하며 그쪽에 이쪽 사정을 얘기해 보고 다시 연락을 준다는 말로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었다. 그때 난, 또 실수를 했다. 그냥 괜찮다고, 소개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려야 했다. 그런데 아빠에 대한 질문으로 머릿속이 텅 빈 공이 되었는지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우울했다. '그 따위 전화가 뭐라고 내 기분을 이렇게 망쳐...'
또 삐삐가 울렸다. 아는 번호다. 삐삐를 가방에 던져 넣고 창밖을 보는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고개를 들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상황이 어찌 되었건 집에 가서 전화를 할 순 없었다. 아직은 엄마가 알아선 안 된다. 공중전화부스를 찾아 전화를 했더니 학부모 말이 그쪽에선 아빠의 부재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니 나만 괜찮다면 날짜를 정해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네..."
맥이 풀렸다. 내가 왜 원치도 않는 선택을 이리 초조하게 기다린 건지. 거절 한마디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걸 못한 내자신이 뇌도 없는 바보 같았다. 아무튼 아빠의 부재가 만남의 거절 사유가 되지 않았던 건 정신적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그건 대인 관계에서 언제나 날 위축시켰던 트라우마 하나가 극복된 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문제가 거절의 이유가 되었다면 오랜 시간 내 삶은 절망으로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과의 만남은 회원으로 연결되었기에 회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난 남편에게 예의 바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 첫 만남 이후 난, 날 소개해준 학부모에게도 학생들에게도 특별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아빠의 부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날 받아주셨던 분이 나의 시어머니였다는 걸. 사주를 본다며 가져간 나의 생년월일로 남편과의 최고의 궁합을 얻어와 내 의견 한번 내보지 못하게 하고 날 그 집안의 둘도 없는 며느리감으로 만들어 버린 분도 시어머니라는 걸.
엄마는 내가 물러터져서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결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만 모른다. 내가 곰이 아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