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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un 19. 2020

여름이 부른다. "야! 열무 나와"

열무 물김치와 얼갈이김치를 담그다.

계절마다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계절마다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그것만큼은 먹어줘야 그 계절을 제대로 즐겼다 싶은 그런 음식말이다. 예를 들어 봄이면 푸릇푸릇한 봄나물을 조물조물 무쳐서 먹어야 할 거 같고, 여름에는 칼칼한 물김치를 담아 음료수처럼 시원스럽게 한 사발 들이켜야 할 거 같다. 가을이면 뜨끈한 국물로 몸을 데워야 고, 겨울이면 대단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김장은 꼭 해야 할 것 같다.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아닌데 이것들을 그 계절에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몸을 움직이게 다.


그리고 이맘때가 되난 여지없이 열무김치를 담는다. 내가 열무김치를 담는 이유는 간단하다. 살짝 익힌 열무의 새콤한 향과 아삭거리는 식감이 좋기도 하지만 열무김치가 다른 김치에 비해 담기 쉽다는 것 또한 주요 원인이 되겠다. 사실 열무김치는 들인 정성 대비 효용 가치가 큰 음식이다. 가심비까지 있어 김치통 한가득 담아두면 며칠은 마음이 든든하다.


멸치를 우려낸 육수에 된장을 풀어 감자와 양파를 듬뿍 넣은 된장국에 밥을 말아 새콤하게 익은 열무 김치를 올려 먹는 것도 맛이 있지만, 입맛 없는 날엔 국수를 삶아 열무비빔국수를 해서 먹어도 좋다. 너무 익었다 싶은 열무김치는 라면을 끓일 때 넣어주면 그것 또한 별미다.

여름 김치는 소금물로 간을 하고 위에는 가라앉은 소금을 살짝만 뿌린다.


만약에 음식을 만들 때 전문가의 솜씨대로 혹은 정해진 레시피대로 만드시오 하면 짜증이 날 것 같다. 음식은 내 입맛에 맞게 나만의 스타일대로 만들 수 있다는 데 묘미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건 타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아야 하는 요리사의 마인드는 아니니 어디에도 새길 필요없는 나만의 개똥철학이라 여겨주면 좋겠다. 맛이야 우리 식구들 입맛에만 맞으면 되니 요리사라면 결코 부릴 수 없는 배짱도 부릴 수 있다.


요리법에서 열무김치는 두 단계만 알면 된다. 절이는 일과 양념을 만드는 일. 절이는 일은 간단하다. 열무를 손질하여? 여기서도 하얀 열무 뿌리를 손질하느냐, 버리느냐가 관건인데 뿌리를 먹고 싶으면 칼로 뿌리의 겉표면을 살살 긁어내어 손질하고 이마저도 귀찮다 싶으면 뿌리는 댕강 잘라내고 길쭉한 열무를  4등분 정도 해 주면 된다. 손질한 열무는 소금물로 간을 하는데 여름김치는 금방 숨이 죽으니 짧은 시간에 절여내야 한다.


절인 열무가 숨이 죽으면 씻어서 건져둔다. 씻을 때 열무의 간을 보고 양념 국물의 간을 조절하면 된다. 열무의 간이 너무 밍밍하면 국물의 간을 세게 하고, 열무의 간이 짜면 국물은 좀 싱겁게 하면 된다. 국물을 만들 때 모든 재료는 믹서기로 갈아 사용하면 편하다. 믹서기에 고춧가루, 양파, 밥, 배, 마늘 등의 재료를 넣고 물을 조금 넣으면 준비는 끝이다. 재료를 간다. 되도록이면 아주 곱게 곱게. 간 재료는 가는 채에 조금씩 넣어 물을 부어가며 걸려낸다. 국물이 깨끗하게 걸러지면 간을 맞춘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열무의 간을 보고 국물의 간을 조절하면 된다. 국물이 완성되면 씻어둔 열무를 넣고 섞으면 끝이다. 마무리는 통깨 솔솔.


요즘처럼 날씨가 더운 날은 하루 정도 익혀준 뒤 냉장고에 넣어두면 새콤하게 먹을 수 있다. 열무는 이렇듯 물김치로 담을 수도 있고, 간 재료를 그대로 부어 물 없이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잎이 더 단단해지는 늦여름에는 풋고추와 청양고추를 갈아 하얗게 담아 먹어도 게미진다(맛있다).

 

음식으로 하나되다.

계절마다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는 건 그 음식으로 가족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계절이 되면 누군가는 그 음식을 얘기하고 다른 이들은 그것과 관련된 추억을 꺼내온다. 그러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이야기의 꼬리를 물게 된다. 나눠 먹은 음식으로 생각이 연결된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드니 같이 먹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된다. 가족은 그렇게 음식 하나로 하나가 된다.


음식은 사람의 입을 행복하게 하여 행복한 입으로 행복한 말을 하게 한다. 열무김치가 우리 식탁에 오른 동안에 우리의 입은 행복해질테니 당분간은 행복한 말을 하며 살 거 같은 행복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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