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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Mar 16. 2020

열무와 봄동이 전해 준 작은 행복

행복은 소소한 일상에도 있다.

 겨울을 달려온 텃밭의 열무


 정원 한 귀퉁이를 차지한 텃밭에서 열무가 자랐다. 그 초록초록한 푸르름부시다.


 봄이란 쭈뼛쭈뼛 고개를 내밀며 차마 눈조차 뜨지 못한 작은 새싹도 가슴이 설레는 계절인데, 저리 맹렬한 기세로 목을 쳐들며 봄을 알리는 열무의 열정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대견함에 목이 메인다.

 작년 늦가을, 우리는 열무씨앗을 뿌렸다. 시금치를 심어 별 소득이 없었던 재작년의 텃밭 농사를 상기하며 이번에는 결코 실패하지 않으리란 다짐으로 씨앗을 뿌린 것이다. 그 열무가 겨울에 눈을 떴고, 추운 바람을 당당히 이겨내고 용감하게 자라났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더욱 좋아라 춤을 다. 그 모습이 신기해 나무도 아닌 것을 그저 지켜만 보다 꽃대까지 올라오는 걸 보곤 그대로 둘 수 없어 김치를 담기로 했다. 만약 열무를 관상용으로 보고자 했다면 정원에 키워 꽃을 피우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열무를 일용한 양식을 위해 키웠으니 아쉽지만 그 무성한 머리칼은 미련 없이 댕강 잘라야 한다.


 열무는 어린 무를 이르는 말로 보통 뿌리보다는 잎을 먹는 채소다.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파종을 하고, 늦봄에서 늦가을까지 김치를 담가 먹는다. 그런 이유로 대개 여름이 다가오는 5월 경이나 6월이 열무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제철이 어디 있겠나 싶겠지만, 그래도 국수에 쓱쓱 비벼 먹는 열무를 생각하면 여름이 제철 맞다.


 그래서 나 역시 초여름이면 열무김치를 담갔다. 하지만 올해는 열무 농사(?)를 지어 약간의 소득이 있으니 시기가 좀 이르긴 했지만 이렇게 김치를 담그게 된 것이다.

 만약 저 열무가 100평, 1000평 하는 광대한 밭에서 자랐다면 나는 저 김치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내 손으로.. 그 조그만 밭에.. 싹을 피울까?를 걱정하며 키워냈기에 저기, 저 김치는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나에겐 국물 한 모금까지 소중한 김치가 되었다.


 소유한 것의 가치가 금액으로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비싼 옷이라도 내 손으로 만든 서툰 옷 하나에 비할 바가 아닌 때가 있고, 못나고 거칠지만 내 손으로 재배한 채소 하나가 비싸고 귀한 재료에 비할 바가 아닌 경우가 그렇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리는 또 그 가치를 느끼기도 한다. 슈퍼에서 구입한 저 봄동처럼 말이다.

한 봉지에 천 원이다. 쟁반만하게 떡 벌어진 봄동만 보다 두 손에 안길 만큼 작은 봄동을 보니 그 귀여움에 웃음이 나 샀던 식재료다. 겉절이로 무쳤는데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다. 천 원의 가치에 감탄이 나는 순간이다.


 열무와 봄동으로 음식을 만들며 생각했다. 세상 흔한 식재료지만 그것의 가치는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 손으로 키워낸 열무는 못났고, 겨울을 이기느라 맛까지 사나워져 질은 떨어졌지만 나에겐 국물 한 모금도 버릴 수 없는 김치를 담게 해 주었고, 광활한 밭에서 존재 가치도 없이 자랐을 봄동은 싼 가격으로 나를 잡아끌어 그 어떤 재료에 비길 수 없는 맛을 전해 주었다.


 열무와 봄동은 누구나 살 수 있는 싸고 흔한 식재료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에겐 특별한 행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마음 부자
 

 그저 그런 행복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말해 주었다.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얻으려고.. 해탈한 고승의 마음까지 느끼게 해 주었다.


 비록 내일이면 다시 자기 계발서를 챙겨 읽으며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바둥거릴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러지 않아도 됨을. 사소한 일상 속에도 행복이 숨어 있으니 그것을 느껴 보라고. 봄햇살의 따스한 손길로 열무와 봄동이 나에게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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