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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예 Sep 15. 2024

비 오는 날의 츄러스

김이 모락모락

"그때 그 츄러스 진짜 맛있었는데, 그렇지?" 축구메이트가 시나몬 츄러스 몇 입을 먹더니 이렇게 말했다. 맞아. 그 츄러스 평생 못 잊어. 그건 그냥 츄러스가 아니야. 과장 없이 이렇게 말할게. 그날의 온도, 습도, 분위기 모든 것의 조화로 만들어진 감동이야.


우리는 그날 이후로 츄러스를 찾게 됐다. 우리의 축구장 먹거리 리스트에는 없던 메뉴인데. 꽤 높은 우선순위에 넣어주게 되었다. 보통은 이런 걸 찾는다. 먹보지만 경기 볼 땐 먹는 것보다 응원이 더 중요하다. 앉아서 먹을 여유는 없다. 서포터즈석에선 착석이 아닌 기립이다. 그래서 한 손에 들기 편한 것, 빨리 먹을 수 있는 것 그리고 디저트보단 간단한 한 끼 대용이 될 만한 것이어야 한다.

 

닭꼬치, 소떡소떡, 핫도그처럼 손쉽게 먹기 좋은 것들. 보통은 이런 걸 먹는다. 경기 시작 전, 경기장 밖 광장에는 여러 대의 푸드트럭이 등장한다. K리그 팀들마다 다르지만 우리 경기장엔 앞서 말한 메뉴들과 감자튀김, 불초밥, 큐브스테이크, 야끼소바 등이 경기 날마다 조금씩 다르게 온다. 물론 닭강정은 늘 함께 하는 스테디셀러다.


십 년 전쯤 한 야구장을 가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시장에 버금가는 푸드코트 라인이 경기장 안에 있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축구장엔 경기장 편의점이 전부였다. 주로 컵라면, 과자, 음료, 맥주를 팔고 어디에선 쥐포를 구워주기도 했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 축구장에도 푸드트럭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처음엔 줄 서는 게 귀찮아 먹고 오거나 경기가 끝나고 식사를 하러 갔다. 하지만 한두 개씩 도전을 해보고 나니 푸드트럭을 즐기는 재미를 알게 됐다. "오늘은 뭐 먹을까?" 하며 친구와 각자 설 자리를 고른다. (두 메뉴 이상은 먹는다는 의미)




비 오는 날 우비를 입고 하는 응원은 또 다른 낭만이다.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 맞이하는 낭만이다. 우비를 입어도 비 맞는 건 예사며 부스스해진 머리칼과 지워진 화장으로 스타일은 어디 줘버린다. 쌀쌀한 날씨 탓에 감기도 같이 얻어 올 수 있는 건 감수해야 한다.


비 오는 날이었다. 슈퍼매치*였다. 가뜩이나 긴장되고 설레는 슈매인데 비까지 오다니. 정신없이 우비를 입고 경기장에 들어가 '절대 질 수 없어!'를 다짐하며 비 맞은 얼굴을 닦으며 응원했다.

(*슈퍼매치: 수원삼성과 FC서울의 대결. 알아주는 라이벌 매치... 였지만 2024년에는 볼 수 없다.)


코끝이 점점 시리고 떨어진 기온에 몸이 으슬으슬할 때였다. 하프타임이 끝나고 오랜만에 축구를 함께 보게 된 동아리 친구가 먹을 걸 사오겠다며 나섰다. 후반전 시작 직전 허겁지겁 들어온 그 친구는 비 맞은 생쥐들에게 이걸 건넸다. '츄러스...? 놀이공원에서만 먹어봤는데.' 한 번도 경기장에서 사 먹어 본 적 없는 음식이었다. 배도 고픈데 반갑기만 하지 뭐~하며 받아 들었다. 갓 나온 츄러스인지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추운 날씨가 도와 김의 형상이 더 잘 보였다.


한 입 앙-하는 순간, 눈이 동그래져 축구메이트를 쳐다봤다. 친구도 때마침 한 입 후 놀라 나를 쳐다봤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눈빛에 웃음이 터졌다. 갓 나와 따끈따끈한데 적당히 바삭해. 적당히 바삭하면서 츄러스를 떠올릴 때 나는 그 맛이 정확히 들어가 있다. 금방 만들어 낸 츄러스의 정석과 쌀쌀한 날씨.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그날 이후 <츄러스> 간판이 보이면 일단 달려갔다. 그때의 걸작을 만든 사장님인지는 몰라도 경기장에 오는 츄러스 집들은 거의 다 맛보았다. 아쉽게도 그 맛을 다신 만나지 못했다. 대항마에 가까운 초코 츄러스는 찾았다. 바삭한 츄러스에 녹지 않은 딱딱하고 길쭉한 초코바가 들어가있다. 그 맛에 비하면 아쉽지만 그래도 심심한 입을 달래줄 괜찮은 간식이 되었다. 그리고 한번씩 꺼내는 추억이 됐다.


우리의 매치데이 루틴이다. 경기장 입장 전 간단히 구경을 마친다. 푸드트럭이 모여있는 곳에 간다. 소떡소떡, 닭꼬치 같은 음식을 산다. 츄러스 푸드트럭이 왔다면 그곳으로 가는 것, 이것이 루틴에 추가됐다. 양손에 이것저것 들고 옆구리에도 무언가를 끼고 입구에 들어간다. 손을 겨우 만들어 휴대폰을 꺼내 e-티켓을 열어 검표원에게 보여준다. 가방 검사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를 찾아 앉는다.


무릎 위에 올려두고 하나씩 맛본다. 후다닥 먹고 음료 한 입 한 다음, 머플러를 꺼내 일어난다. 선수 입장에 맞춰 응원을 시작한다. 하프타임쯤 츄러스를 꺼내 먹는다.


그러다 가끔 얘기한다.

"그때 그 츄러스 진짜 맛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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