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야자 안 할 놈 둘만 손 들어, (물 흐릴 인간 알아서 빠져)에 1초도 망설임 없이 몸이 움직였다. 그렇게, 그 해 정말 야자를 안 했다.
늘,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 애와 함께 여행한다는 것은 안정감을 주었다. 전처럼 길을 못 찾아 온 동네 대만 사람을 다 만나야 하는 일도 없었고, 총명해서 (센스쟁이) 나의 실수를 예방해 주며,누군가와 그날의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세계 5대 박물관 안에 꼽힌다는 대만국립고궁박물관에 가서 대만이 자랑하는 유물을 보고, 지우펀의 골목을 쏘다녔다. 진과스의 바닷바람에 헤어스타일이 광녀가 되어 광부 도시락을사 먹고,스린야시장의 우리 얼굴만 한 지파이(닭튀김)를 먹고는so so, 했다.
문제가 없었다. 시간은 태평하게 잘 흘렀다.
순진했다. 당시 이십 대 후반의 내가 그토록 순진했던 것은 기질적인 면과 더불어인생의 경험치가 현저히 떨어져서 일수도 있겠다.그 애와 함께 하는 동안, 좋으면서도 슬슬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 나는 다방면의 초심자, 그녀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감격의 정도가 달랐다. 문제는 내가 예상대로 쫄았다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300원으로도 한 끼를 때울 수 있다는데 감격한 내가 스린의 지파이에 평가를 내리고 있었고, 진과스의 멋진 바다를 보고도 쌍따봉을 날리지 않았다. 나는 마치 이 정도쯤이야 니스의 해변에 비하면 평범한 바다야, (프랑스에 가보질 않음)하는 식으로 사고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음을 후에, 깨달았다.
멋진 친구였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녀와 허름한 숙소에서 나누었던 대화는 아직도 소중하다.
그냥 내가 잃은 것이었다. 감격할 순간들을 놓치고 있었다.
만화「슬램덩크」에서 해남과의 경기에패한 후서태웅이 강백호에게 그랬었지.
네가 실수를 범할 건 처음부터 계산에 들어 있었다.
강일호가 된 기분이었다. (강백호는 내 최애 캐릭터이므로 이 와중에도 감히 같을 수는 없다) 혼자서 하는 첫 여행, 부족했다. 실수할 수 있었다.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건 아직 내 몫이 아니었다.
농구가 팀플레이인것처럼, 함께 하는 여행도 그랬다. 그 애의 원숙함은 양날의 검같았다. 안락했지만 내 힘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별거 없네,라는 마음도 내 것이 아니었다. 마구 흔들렸다.
이제 그 애는 가고, 나는 남는다. 하필이 상태로 혼자가 되다니, 혼란스러웠다. 비행기 티켓은 한 달 오픈이다.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돌아갈까, 속으로 도망칠 궁리를 했다. 마음이 시커메졌다. 그 많은 기쁨이 어디로 사라졌지? 실패, 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호스텔 1열에서 이 모든 걸 관람한 그 아이는 함께 싱가포르로 가자고 해주었다.나도 잘 몰랐던 내 마음을 알리가 없을 텐데도, 어스름하게 친구의 불안을 짚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