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임신이 될까?, 아이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궁금증을 해결해 보자고 했을 때 학생들은 웃기도 하고 쑥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보호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던 경험이 있는 학생은 반마다 평균 6명 정도였다.
학생들의 질문에 보호자들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 남자하고 여자가 자면 아이가 생긴데요.
- 남자하고 여자가 사랑을 나누면 생긴다고 했어요.
- 학교에서 배우래요.
- 키스하면 생긴데요.
- 손잡으면 생긴데요.
- 아빠가 크면 다 알게 된데요.
- 엄마가 쓸데없는데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하래요.
아이는 어떻게 태어나냐는 질문에는
- 다리 밑에서 주워온데요.
- 그런 것 몰라도 된데요.
- 학교에서 배우래요.
- 황새가 물어다 준데요.
- 똥꼬에서 태어난데요.
- 아직은 몰라도 된데요.
학생들이 한 명 한 명 발표할 때마다 교실은 시끌벅적했다. 학생들은 이 질문을 보호자에게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했단다. 그러나 학생들의 질문에 정확하게 알려 준 보호자는 한 명도 없었다.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학교에서 배워보자
10여 년 전고딩엄마의 영상을 텔레비전에서 봤었다. 열여섯의 앳된 그녀는 임신이 그렇게 쉽게 되는지 몰랐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아이가 만들어진다고 했지, 어떻게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배가 볼록하게 나왔는데 임신한 줄 모르고 살찐 줄 알았다는 고딩엄마의 이야기도 들어본 적 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으니 학생들이 모르는 건 당연하다.
6학년 출생과정 알아보기
학생들에게
-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았다' 임신이 될 수 있을까요?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손을 들어봅시다.
라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한 명이 장난 삼아 손을 듣다. 옆에서 지켜보는 친구들이 마구 웃는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생식기를 만졌다.'임신이 될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장난으로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소심한 여학생은 손을 들다 말았다.
-'키스를 했다' 임신이 될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장난으로 한 명이 손들었다. 다른 학생들이 또 웃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했습니다.'임신이 될 수 있을까요?
학생들 말로 나대기 좋아하는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 성관계가 뭐예요?
라고 물었다. 언제나 있는 질문이다. 질문하는 이는 몰라서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질문으로 학급 내에서 잠시 관심을 받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하다. 그 학생의 의도대로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들렀다. 그 중 박장대소를 하며 웃던 학생 중 한명이 자리에 앉아
-야, 너 그것도 몰라.
라고 말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또 소리 내어 웃었고 교실은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다.
그때 한 남학생이 손을 들어
-선생님, 저 애가 박는대요.
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에서 정색했다. 눈동자의 흔들림 없이 그 말을 했다는 학생을 한 번 쏘아봤다. 순간 학생이 움찔했다. 낮은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 존엄한 인간의 성적행위가 여러분에게는 웃음거리입니까?
교실은 순간 엄숙해졌다. 한 템포 쉬고
- 만약 여러분이 이 수업시간을 장난으로 임하고 있다면 스스로 반성해봐야 합니다. 내 머릿속이 얼마나 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과 태도로 가득 차있는지요. 지금이 성적인 농담을 하는 시간입니까? 지식을 배우고 탐구하는 시간입니까? 인간의 존엄한 성적행위를 막말로 표현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존엄한성적행위를 가볍게, 장난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태도가 있기에 지금 여러분이 수업시간에 장난스러운 행동과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적행위는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언제나 존중되어야 합니다. 타인의 행복추구를 방해하고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은 아주 부끄러운 일입니다.
성적 행위에 대해 웃고 장난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다. 사회가 성적행위를 장난스럽게, 아주 가볍게, 폭력적으로 대하고 있다. 사회가 성적행위를 존엄하게 생각했다면 학생들이 지금처럼 반응하지 않았으리라. 불법촬영, 딥페이크, 그루밍 성범죄, 성폭력 , 성착취 등 젠더폭력이 만연하고 성상품화와 성적대상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모습을 보면 학생들의 반응에 놀랄일도 아니다. 학생들은 사회에서 배운 대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내 말이 끝나마자 학생들은 더 이상 웃거나 장난스러운 태도로 수업에 임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했습니다. 임신이 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6학년 4개 반 100 정도의 학생 중에서 20명가량이 그렇다고 답했다. 학생들에게 성관계란 남자의 발기된 음경이 여진의 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고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성관계로 자궁에 정자가 들어가 72시간 이내에 난자를 만나면 수정란이 될 수 있다. 배란된 난자는 24시간 안에 난관에서 정자를 만나야만 한다.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해서 자궁내막에 자리 잡아 착상되어야 임신이 된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때 'Why 사춘기와 성'을 읽으면서
-엄마 아이 만들 때 그럼 바지를 벗어야겠네. 그래야 음경이 질로 들어가잖아.
큰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물었고 나도 아무렇지 않게그렇다고 답했다. 아이는
- 엄마, 그럼 동생 만들 때 나는 어디에 맡겨두고 성관계를 한 거야?
나는 이 물음에 웃음이 나왔다.
- 우리가 벗은 몸을 남에게 안 보여 주잖아. 그것처럼 성관계도 남이 안 보이는 곳에서 하는 거야. 네가 그래서 못 본거야. 그리고 남의 몸 훔쳐보면 안 되는 것처럼 성관계도 마찬가지야. 만약의도적으로다른 사람의 성관계를 훔쳐본다면 법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어.
아이는 계속 질문을 했고 나는 계속 답변을 했었다. 아이가 어른들에게 질문하면 그냥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답하면 된다. 보호자가 장난스럽게 대답하면 아이는 성적행위를 장난스럽게 대한다. 보호자가 아이의 질문에 숨기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아이는 성을 숨기는 것으로 여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은연중 교사의 성적 태도를 배운다.
-'남성의 정자를 추출하여 여성의 자궁에 직접 넣었다' 임신이 될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다. 마지막으로
-'수정란을 여성 자궁에 이식했다' 임신이 될 수 있을까요?
정상적으로 성관계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났는데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을 난임이라고 한다. 난임인 경우 보조생식술인 시험관 시술을 통해 임신할 수 있다. 성관계와 보조 생식술은 윤정원, 김민지의 '소녀 몸 교과서'라는 도서의 그림자료를 활용하여 설명했다.
여자의 신체가 임신하면 어떻게 변할까?
학생들이 겪고 있는 2차 성징처럼 임산부에게 나타는 신체적 변화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학생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려고 단어조합퀴즈를 활용해 임신 시 나타나는 신체변화를 알아보았다.
임신 시 나타나는 신체변화 찾기 단어조합 퀴즈 PPT
첫 번째 퀴즈의 정답은 월경 멈춤이었다. 학생들에게 월경이 멈추는 이유를 물었다. 한 남학생이 임신을 하면 자궁내막에 수정란이 자리 잡기 때문에 자궁내막이 떨어지지않아 월경이 멈춘다고 답했다. 나는 학생들에게월경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했다.
- 머리카락이 자라고 손톱이 자라는 것처럼 사춘기가 시작되고 여성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자궁내막은 한달에 한 번씩 자연스럽게 자라나서 자연스럽게 떨어지는데요. 우리는 이것을 월경이라고 합니다. 임신을 하면 수정란이 자궁내막에 자리를 잡기 때문에 더 이상 월경을 하지 않습니다.내가 또는 나와 성관계를 한 여자가 월경을 하지 않았다면 임신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대체로 드라마에서 보면 임신테스트기로 임신 확인하잖아요. 약국에서 임신테스트기 사서 소변을 묻히면 임신한 경우 두줄, 안 하면 한줄이 나옵니다. 임신했을 때 나오는 호르몬이 소변이 존재하기 때문에 소변으로 검사를 하는 것입니다.
입덧은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이다. 임신 4-7주 사이에 입덧이 시작되고 11- 13주에 가장 심하며 14-16주까지 지속된다. 학생들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었다.
-선생님은 입덧이 너무 심해서 하루에 제일 많이 토했을 때는 10번 정도 토했습니다. 어느 날은 너무 많이 토해서 머리가 빙빙 돌고 온몸에 힘이 없어져서 탈수 직전까지 갔습니다. 선생님이 출근한 남편에게'나, 너무 힘들어. 나 아무래도 탈수가 된 것 같아. 나 좀 병원에 데려가 줘.'라고 말했습니다.
라고 말하고 학생들에게 마법을 걸었다.
-이 교실에 생물학적 여자는 없습니다. 모두가 생물학적 남성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임신해서 선생님처럼 전화를 했다면 나는 어떻게 할지 발표해 봅시다.
라고 물었다. 한 반에 두 명 정도의 남학생이 장난으로 '나보고 어쩌라고. 너 혼자 알아서 해"라고 말한다고 했다. 이들은 말이 끝나자마자 친구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그러고도 좋다고 희희덕거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렇게 관심이 받고 싶을까? 나는 그 학생들에게
- 아이는 존엄한 성관계를 통해 남녀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도 성적행위에 책임지고 임신과정에 있는 여성을 돕는 것은 인간적 도리입니다. 우리는 동물이 아닙니다. 인간이기에 인간답게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직장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아내에게 달려가 함께 병원에 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반은 진짜 사나이, 진정한 남자, 스위트한 남자들이 엄청 많네요. 이런 남초에 다니면 정말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라고 말했더니 다들 또 폭소를 터트렸다.
나는 20년 전 남편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선생님, 남편이 뭐라고 했냐면 '나, 지금 바빠. 119가 잘해줘. 119한테 전화해.'라고 말하고 전화를 뚝 끊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너무 슬퍼가지고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택시 타고 응급실에 갔었습니다. 간호사분이 ' 산모님 왜 혼자 오셨어요.'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더라구요.선생님은 그때 처음 알았어요. 선생님 몸 안에 눈물이 그렇게 많은 줄은요. 며칠 전에 선생님 남편이 감기에 걸려 머리 아프다고 했을 때 선생님이 똑같이 복수해 주었어요. '왜 나한테 말해, 119가 잘해주니까 119한테 말하라고. 나한테 말하지 말고.' 힘들 때 말 한마디는 약도 되기도 하고 칼도 되기도 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고 하잖아요. 선생님은 평생 그날을 못 잊을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실은 그날 남편 직장에 큰 사건이 터졌었다. 남편이 업무담당자였기 때문에 자리를 뜰 수 없는 상황이었단다. 응급실에서 링거를 다 맞고 정신이 좀 돌아왔을 때 남편이 근무복을 입고 헐레벌떡 달려왔었다. 남편을 보니 얼마나 서럽던지. 한참을 울었고 남편은 한참을 미안하다고 했었다. 직장 생활하면서 우두머리도 아니고 말단인 남편이 쉽게 직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섭섭한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임신 시 체중의 증가는 산모와 아이를 위해 모두 중요하다. 평균 임산부는 정상체중인 경우 11kg에서 16kg의 체중증가를 보인다. 나는 학생들에게 임신 전 선생님의 체중은 49kg였는데 입덧하다가 46kg으로 빠졌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내가 임신 전에 49kg이었다고 말하자 깜짝 놀랐지만 나도 한 때는 50kg을 넘지 않는 몸무게의 소유자였다. 애들은 상상되지 않겠지. 나의 옛모습이. 임신했을 때 나는 70kg까지 체중이 늘어났었다. 임신했을 때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뛰어다니기 좋아하는데 뛰지도 못하고, 엎어져서 자는 것 좋아하는데 엎어져서 자지도 못하고, 조금만 움직이면 숨이 차서 헐떡거렸다.자궁이 방광을 눌러 자다가 깨어나서 화장실에 가야만 했다. 소화가 늘 안되지만 음식이 너무 맛이 있었다. 변비와 치질로 힘들었다. 임신했을 때 누워서 책 읽고 남편이랑 맛있는 거 먹었던 일들이 생각났다.남편은 태아가 듣는다고매일 한 시간씩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남편은 그림책을 읽어주고 나는 계속 누워서 먹다가 체중이 그렇게 늘고야 말았다는 이야기에 학생들이 웃음을 떠트렸다. 임신했을 때 주변사람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아이를 함께 만든 남편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는 어떻게 태어날까?
임신했을 때는 배가 나오고 몸무게가 늘어나고, 빈뇨증상으로 화장실만 왔다 갔다 다니면서 어서 빨리 아이를 낳고 싶었다. 아이만 낳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임신 전보다 더 잠도 못 자고 책임져야 하는 일들만 가득했다.
학생들에게 태아가 자궁 안에서 자라니 아이는 어디로 태어날지 물었다. 학생들은 질이라고 말했다. 맨 처음에 똥꼬로 아이를 낳는다는 말은 해부학적으로 무식함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일이라고 했더니 학생들이 웃었다. 5학년 수업할 때 '월경혈이 어디에서 나올까?'라는 질문에도 똥꼬라고 답하는 학생이 반마다 한 명 이상 있었다. 학생들에게 우리가 밥을 '맘마'라고 안 하는 것처럼 이제 초등학생 그것도 5, 6학년이 되었으니 의학적인 용어로 똥꼬라는 말 대신 항문이라는 말을 사용하자고 했다. 언젠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월경을 했다던 학생이
-선생님, 저는 보건수업시간에 질로 생리피가 나온다고 배우기 전까지 똥꼬에서 피가 나오는 줄 알았어요.
라고 말하며 웃었다.
자연분만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너는 수술해서 태어났어'라는 말 들어본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다. 한 반에 3명에서 많게는 7명까지 손을 들었다. 왜 수술했냐고 물었더니
- 머리가 커서요
- 양수가 적었데요.
- 형이 수술해서 태어나서 저도 수술했데요.
- 제가 너무 작았데요
- 머리가 아래로 안 내려왔데요.
- 엄마가 계속 진통하다가 힘이 빠져서 수술했데요.
초산부의 진통시간은 평균 10시간- 12시간, 경산부는 4-6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첫째는 13시간- 14시간 정도 진통을 했고 작은 아이는 7-8시간 진통했었다고 말했다. 첫째를 낳는데 일반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고 첫째 손들어보라고 했더니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남편이랑 첫째를 낳으러 산부인과에 갔을 때다. 의사가 탯줄을 자르라고 했을 때 남편이 무섭다고 안 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의사는 두려워 할 필요 없다고 했고 남편은 덜덜덜 떨며 탯줄을 잘랐다. 둘째를 낳았을 때는 의사가 말하기도 전에 탯줄을 자를 태세를 하고 있었다던 남편의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아이를 낳고 난 후 진짜 힘든 날들이 시작되는 거야
나는 임신했을 때는 어서 빨리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를 바랐다. 임신으로 인해 몸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미 아이를 키우고 있던 분들은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좋은 줄 알아.'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아이가 태어나니 그분들의 말을 맞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생명을 이어가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내가 손과 발이 되어야 했었다. 신생아시기 아이는 두 시간마다 일어나서 먹고, 싸고, 울고 하는 바람에 몸은 늘 피곤했다. 몸의 피곤함은 마음의 피곤함을 불러왔었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 남편과 다툴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면서 남편과의 다툼도 늘어났다. 출산휴가가 끝나갈 즈음 인근 아파트에서 다른 집 아이 2명을 돌보고 있는 큰언니 집에 큰 아이를 맡겼다. 밤새 우는 아이 달래느라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에서 아침마다 아이를 큰 언니집에 맡기고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이 그 당시에 너무 벅찼다. 하루는 큰아이가 열이 나서 퇴근하고 병원에 데려갔는데 폐렴이라며 의사가 입원을 권유했다. 아이가 입원하면 아이를 돌볼 사람이 있어야 했다. 큰 언니도 이미 다른 집 아이를 돌보고 있었기에 병원에 와서 우리 아이를 돌볼 상황은 아니었다. 남편이 우리와 같은 지역에 사는 사촌누나에게 아이를 봐주라고 부탁했다. 사촌 누나가 아이를 돌봐주기로 했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서 자고 7시 정도에 일어나니 사촌형님이 오셨다. 아이는 낯가림이 심한 편이어서 사촌형님을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 떨어뜨려 놓고 버스 타고 출근하는데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학교에 출근해 복도에서 우연히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내 얼굴을 보고 교장선생님께서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교장선생님의 한마디에 울음보가 터져서 한참을 울다가 아이가 입원했다고 말했다. 교장선생님은 어쩌냐고 오전만 근무하고 조퇴하고 아이를 돌보라고 했다. 조퇴하고 병원에 갔다. 아이가 울다가 지쳐서 잠들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낯선 장소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겼으니 아픈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 싶다. 그날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보며 나는 또 울면서 남편에게 우리가 왜 아픈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대성통곡을 했었다. 남편이 사는 게 다 그렇다고 말하고 나를 달랬다. 남편이 직장에 사정을 이야기해서 휴가를 내고 아이가 퇴원할 때까지 아이를 돌봤었다. 남편은 아이들이 자라는 내내 승진하지 못했다. 어느 날 남편이 승진하는 동기와 후배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 나는 맨날 애들 예방접종 하러 다니고 애들 보고 집안 일 하느라 승진 공부도 못하고 아부도 못해서 속상하네.나도 좀 승진하게 당신이 애들 좀 봐주면 안 된가? 나보다 한참 늦게 임용된 애들도 승진하고 그러드만.
나는 정 승진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동기들은 이미 승진해서 편한 곳에서 일하고 자기보다 한참 늦게 임용된 후배들도 승진하는데 맨날 그 직급에서 힘들게만 일하던 남편. 나는 한 번도 승진하는 남편의 동기들이나 후배들을 부러워하지 않았으나 남편은 매년 승진시기마다 시무룩했었다.
작은 아이 낳고 아이들이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늘 내가 부모로서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으로 혼란스러웠다. 아이가 없었다면 남편과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이들을 키우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의 지혜를 갖지 못했으리라. 아이를 키우다 보니 겸손해지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아이는 절대 여성 혼자 키울 수 없다. 아이를 만든 이와 함께 온 정성을 들여서 키워야 한다. 또한 주변의 많은 이들이 아이를 키우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속담처럼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 돌봄 노동을 하는 이가 없었다면 아이들은 이렇게 잘 자라지 못했으리라. 학생들에게 출산 후 아이를 양육하면서 생겼던 어려움들을 이야기하고
- 임신했을 때 힘든 것은 아이 키울 때 힘든 것에 비하면 세발의 피더라고요. 아이가 이제는 대학생이 되더니 자기 혼자 큰 줄 알고 선생님이 무슨 말하면 잔소리한다고 난린데 그럴 때마다 얼마나 섭섭한지 몰라요. 여러분이 세상의 빛을 보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돌봄 노동을 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 그분들의 노고를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지금부터 핸드폰을 꺼내 나를 키워 준 양육자분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봅시다. 메시지를 보낸 후 답장이 온 학생 선착순 여섯 명만 하리보젤리 주겠습니다. 참 보호자에게 보건수업시간이라고꼭 말하세요. 저번에 한 학생이 보호자에게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보냈었습니다. 보호자가 직장에서 일하다가 평상시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하는 아이가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보내니 깜짝 놀라 아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체육시간이라 아이가 전화를 안 받자 담임선생님에게 무슨 큰일이 난 건 아닌가 싶어 전화를 했고 체육시간이라 담임도 전화를 받지 못했다. 보호자는 결국에 교감실에 전화하여 자기 자녀반에 무슨 일 있냐며 담임도 아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걱정한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갑자기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보내면 보호자가 깜짝 놀랄 수 있습니다. 메시지를 보낼 때는 보건수업시간에 출생과정에 대해 배웠다는 말을 꼭 넣고 감사함이나 사랑함을 표현하세요.
젤리 하나 받겠다고 학생들이 휴대폰을 켜고 양육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어떤 학생들은 양육자가 원래 근무 중에는 전화를 안 받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것은 운명이다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메시지가 온 학생들은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고 하리보 젤리 하나를 받았다. 갑자스런 사랑고백에 물음표를 던지는 보호자들의 답변으로 교실은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나도 나에게 밝은 빛을 주고 나를 키워준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전화를 드렸다. 보건수업을 통해 학생들도 성장하겠지만 언제나 학생들보다 많은 배움이 일어나는 이는 나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보건수업시간이 참 좋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당신의 자녀는 표현하지 않아도 당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어머니가 되었지만 일터에서 바빠 답장주지 못하신 어머니 제가 젤리 주었습니다
보건수업시간에 뭘 배웠는데??? 엄마, 아빠, 할머니 모두의 노력으로 학생들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계속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