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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은 행복을 향한 첫걸음이다

5학년 성교육 첫번째 수업이야기

by 민들레

2025년 성교육이 시작되었다

올해 5학년은 12차시의 성교육을 준비했다. 매년 17차시의 보건수업을 했었다. 그러나 저학년 학생이 600명이 넘는 학교에서 보건실을 비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왜냐면 의사표현이 서툰 저학년 학생을 돌보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1학년 학생 1명의 증상을 듣고, 진단하고, 처치하는데 드는 시간과 정성은 6학년 5명을 상대하는 것보다 힘들다.


올해 수업은 '성교육'에 집중했다. 보건영역의 다른 교육들은 담임선생님께서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성교육도 담임 선생님이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담임교사의 어깨에 짐이 너무 많다. 그들은 성교육을 연구할 시간이 없다. 누군가는 하여야 하는 성교육이라면 지금 상황에서 내가 가장 적절하다.


5학년 성교육 1차시 판서

행복을 위해 배워야 해

학생들에게 물었다.

"왜, 사나요?"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매 번 비슷하다.

"그냥요."

"죽지 못해서 살아요"

하지만 우리는 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산다. 행복을 향한 여정에 핵심적인 권리가 있다. 바로 '자기 결정권'이다. 성적인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 존중받는 사회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간다. 우리는 이런 관계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전혀 준비하지 않았는데, 담임 선생님이 단원평가 본다고 하면 어떤 감장이 생길까요?”

학생들은 말했다.
“불안해요, 걱정돼요, 혼란스러워요, 당황스럽고, 속상하고, 지쳐요.”
그 감정들을 하나하나 함께 적어 내려갔다.

이번에는 이렇게 물었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시험 본다고 하면 어때요?”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기대돼요, 안심돼요, 뿌듯하고 여유로워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몇몇은 “그래도 한두 개 틀릴까 봐 좀 걱정돼요”라고도 덧붙였다.

인간사 준비가 되어있어도 불안하고 걱정되는데 전혀 준비하지 않다면 어떻겠는가? 결국, '준비' 즉, 배움의 과정은 행복을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된다.



사춘기 준비가 필요해

지금 학생들은 만 11세.
인간은 두 번의 급성장기를 맞는다. 바로 영아기와 사춘기다. 영아기는 누군가의 헌신적인 돌봄 없이는 자랄 수 없다. 하지만 사춘기는 다르다. 스스로 변화하는 몸과 마음을 받아들이고 주도해야 하는 시기다. 준비 없이 맞이하면 우리는 혼란과 불행을 겪는다. 하지만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면, 보다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다. 학생들은 사춘기를 준비해야 한다. 몸과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해하고, 나 자신을 돌봐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참고로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벌써 반백년을 살았고, 지금은 갱년기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선생님, 스무 살 같아요."라고 말했다.

스무 살... 아, 그때가 그립다.


나는 앞으로 수업 시간마다 내가 창작한 ‘피노키오’와 ‘백설이’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이야기는 듣는 이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학창 시절 선생님께서 해준 이야기들, 지금도 잊지 않았다. 선생님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데 말이다. 이야기의 힘은 강력하고 영원하다.


피노키오 이야기

안녕! 나는 동화초등학교 5학년 피노키오야.
너희들도 알다시피 난 할아버지랑 고래 뱃속에서 나온 후 사람이 되었지.그 후 할아버지께서는 신데렐라 할머니랑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셨어.나는 지금 숲 속 오두막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어.


몇 달 전 신데렐라 할머니께서
“피노키오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물었어. 나는 “할머니께서 제일 예뻐요.”라고 거짓말을 했지. 그런데 그날 이후 내 몸이 변하기 시작했어.


어떻게 변했냐고?

부끄럽지만 말하기 좀 그런데 지금부터 말해볼게.

일단 목소리가 변해서 난 요즘 거의 말을 안 해.

하루에 천오백팔만 육천 단어만 겨우겨우 말하고 있어.

그리고 말하긴 좀 그런데...... 거기 있잖아. 거기에 털도 났어. 예전처럼 거짓말을 했을 때 차라리 코가 길어지면 좋겠어. 이러다가 털북숭이 원숭이로 변할 것 같아서 두려워.

-피노키오 이야기에서 질문

"선생님, 할아버지가 할머니랑 결혼할 수 있어요?"

"우리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 결혼할지 말지는 누가 결정할까요? 바로 나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성적 주체로 우리와 평등한 인간이며 존엄한 존재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결혼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해줬다.



백설이 이야기

안녕! 나는 동화초등학교 5학년 백설이야. 난 사과 궁전에서 공주로 태어났어. 10살 때 새엄마가 사냥꾼을 시켜 날 숲 속에 버리라고 했지. 사냥꾼은 날 버리지 않고 새엄마를 신고했어.

새엄마는 감옥에 갇혔어.


그 일이 벌어진 후 아빠는 나랑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다며 왕을 그만두고, 과나무가 울창한 숲 속 오두막으로 이사를 했지.

몇 달 전 산책을 하는데 빨간 모자를 쓴 할머니께서 나타나셨어. 할머니께서는 “너, 참 예쁘구나. 이 사과 먹어.”라고 말하며 사과를 주셨어.

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사과를 우걱우걱 먹어 치웠어. 그런데 그날 이후로 내 몸이 변하기 시작했어.

혹시 그 사과에 독이 있어 내 몸이 변하는 걸까?

바람만 스쳐도 가슴이 아파. 이건 좀 말하기 그런데 거기 있잖아, 거기에 털도 나기 시작했어.

내 엉덩이가 커지고 허리도 잘록해지고...

이러다가 털북숭이 개미로 변할 것 같아 두려워.


-백설이 이야기에서의 질문

"선생님, 사냥꾼이 왜 신고했을까요?"

"어린이와 청소년은 아직 완전한 성인이 아닙니다.

옆에서 어른들이 잘 자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이를 버리는 일은 아동학대에 해당하기에 신고했다고 사냥꾼에게 어제 전화 왔습니다."


사춘기 준비, 이제 시작

학생들에게 물었다.
“피노키오와 백설이가 두려워하는 이유가 뭘까요?”

학생들은 금세 대답했다.
“몸에 털이 나서요.”
“몸이 변하는 이유를 몰라서 무서워요.”

나는 말했다.
몸이 변화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면 두려울 수밖에 없어요. 자, 오늘부터 선생님이랑 함께 즐겁게사춘기 준비해봅시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사춘기 준비, 그렇게 시작되었다.


수업 끝, 그리고 질문

수업이 끝난 뒤, 궁금한 점이 있는지 물었다.
한 학생이 웃음과 부끄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님, 근데 남자 몸 속의 정자가 어떻게 여자 몸 속으로 들어가요?"

수업내용과 전혀 관련 없는 질문. 물어볼 어른이 없었나 보다.

나는 말했다.

"그건 숙제입니다. 다음 시간까지 양육자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워크북에 적어 오세요."

그리고 덧붙였다. "인터넷 자료와 유튜브에는 잘못된 정보가 많습니다. 꼭 양육자에게 물어보세요. 학교 선생님이나 학원 선생님 등 다른 어른들에게는 물어보지 않아요. 만약 양육자가 모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런 경우 그냥 옵니다. 다음 시간에 선생님이 알려주겠습니다."

오늘 밤, 집집마다 어떤 대화가 오갈까?

보호자들이 자녀와 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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