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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Nov 01. 2024

발가락 골절환자 병실생활에 적응하다

병실생활은 조직생활이다.

병실생활은 조직생활이다.


병실에서의 권력은 나이권력이 제일 크게 작동했다. 305호 병실에서는 70대인 뽀글이 할머니께서 나이가 가장 많으셔서 우리 병실의 대빵이 되었다. 그 다음은 70대  예쁜이 할머니,  50대 조용한 아줌마, 50대 뜨개질 아줌마, 그리고 내 순서였다. 맨 나중에 들어오신 꽃과 음악을 사랑하는 로맨스 할머니께서는 뽀글이 할머니가 퇴원하신 날 입원하시고 그날 바로 권력 1순위가 되었다.


권력관계의 우위에 있는 어르신들은 병문안을 자녀부터 일가친척까지 많은 사람들이 왔다. 반면 나를 포함한 3명의 아줌마 환자는 병문안을 오는 지인이 거의 없었다. 할머니들 병문안을 온 일행 중에는 꼭 한 명 이상은 눈물을 훔쳤고,  할머니들에게 위로금을 주었다.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위로금을 준 지인에게  뭘 이런걸 주냐며 마다하면서 받았다. 할머니들의 방문객들은 음식도 바리바리 싸왔다. 덕분에 많이 얻어먹었다. 하루는 하도 얻어만 먹는 것 같아 남편에게 퇴근길에 과일이랑 비타 500을 사 오게 해서 병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할머니들의 지인들은 병문안을 끝내고 갈 때마다 "잘 부탁합니다."라는 인사말도 잊지 않으셨다.


뽀글이 할머니께서 퇴원하시고는 로맨스 할머니께서 그 권력을 이어받았으나 뽀글이 할머니만큼의 막강한 권력은 갖지 못했다.  뽀글이 할머니께서 일인자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할머니의 거침없는 입담이 한몫 했다. 뽀글이 할머니께서는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했는데도  이상하게 매번 들을 때마다 이야기가 새로워지고 더 재미있어졌다.  뽀글이 할머니께 "어르신 어쩌면 그렇게 말을 재미나게 하세요?"라고 물었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좀 코미디언끼가 있당게. 내가 말하면 어째 사람들이 막 웃드라고. 내가 그렇게 웃긴가? "라고 하셨다.  우리 병실은 뽀글이 할머니께서 불 켜면 일어나고 불 끄면 자고, 텔레비전 틀면 보고, 끄면 안 보곤 했다.  뽀글이 할머니는 평소 밤 8시 30분이면 병실 불과 텔레비전을 끄셨다. 그러면 그때부터 이쁜이 할머니께서는 유튜브로 트롯가수들의  어그로를 끄는 연예인 소식을 보셨다. '장민호가 어쩌고 저쩌고'가 가장 많이 들렸다. 그때부터 나와 조용한 아줌마, 뜨개질 아줌마는 코 고는 소리와 유튜브 소리를 자장가 삼아 하나 둘 잠들었다.  뽀글이 할머니가 퇴원하고는 로맨스 할머니가 밤에 11시까지 텔레비전을 보셨기에 우리는 수면패턴이 바뀌게 되었다.


 뽀글이 할머니께서는 퇴원하실 때 다른 환자들에게 몇 번이나 그동안 고마웠다고,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고마움의 표시로 병실 사람들에게 시원한 아이스커피까지 쏘셨다. 뽀글이 할머니께서 퇴원하는 날 아침에 예쁜이 할머니께서 "언니, 인자 언제 볼랑가 모르것네. 언제 우리 집 근처 오먼 꼭 연락하소."라고 말하시며 눈물을 찔금 꺼렸다.  뽀글이 할머니께서 퇴원하신 날은 재미있는 코미디 프로가 끝난 것처럼 마음 한켠이 쐐했다. 할머니께서 엉덩이 씰룩씰룩, 어깨는 들썩들썩 거리며  오래오래 신나게 잘 사시면 좋겠다.



뽀글이 할머니께서는 결혼할 때 빈 손으로 시작했단다. 불 가리지 않고 일해서 사고, 재개발 투자하고, 딸들 살 때 돈 대주고 했다며 뿌듯해하셨다. 할머니 한 손의 엄지, 검지가 한 마디 반 밖에 없었다. 젊어서 타이어 공장에서 일하다 절단되었다고 했다. 할머니께서는 60대에 비닐하우스에서 뽕짝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에게 커피 타다 드리다가  발목을 삐끗해 수술했었다. 그런데 3주 전에 지인 딸의 결혼식에 갔다 오는 길에 버스에서 내리다가 그때 수술한 발목 뼈가 금이 가서 이번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한 번 고장  곳은 자꾸 고장 난다며 나보고 이제 그 발가락이 평생 아플 거라고 하셨다.


뽀글이 할머니께서 퇴원하는 날이었다.  할머니는 아침에  회진 온 원장에게 "아이고 원장님 감사합니다. 원장님 덕택에 어린이집 청소 다시 디니것네요.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의사는 매우 흐뭇한 표정이었다.  할머니께서는 3년 전부터 하루에 두어 시간 아동센터 청소를 하고 계신다고 했다. 보수는 이삼십만 원가량이고 구청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운 좋게 얻은 자리라고 했다.  할머니 딸 말에 의하면 어린이집이 아니라 아동센터란다. 내가 모든 편의점을 CU라고 하는 것처럼  할머니는 자신이 일하는 곳을 맨날 어린이 집이라고 불렀다.  할머니께서는 퇴원해 일할 생각을 하면 엉덩이가 씰룩씰룩, 어깨가 들썩들썩거린다고 했다. 할머니는 춤추고 싶을 정도로 일 다니는 것이 즐겁다고 하셨다. 나도 병가 끝나고 학교에 복귀하면 할머니처럼 춤추고 싶을까?


할머니는 오전에 아동센터 청소하고 오후에는 할아버지 차타고 근교에 있는 밭에 가서 일하러 가는 게 낙이다고 했다. 할머니께서는 돈이 없어서 아동센터 청소하는 게 아니라 청소일 나가는 게 재미있어서 하는 거라고 몇 번을 강조하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두 명의 노인이 생각났다. 학교에 박스를 수거해 가는 할머니가 계신다. 어느 날 박스를 치우고 있길래 좀 도와드렸다. 그때 할머니께서 그러셨다. "내가 이일 하는 것 우리 애들은 몰라요. 진짜 모른당게요 선생님. 우리 딸은 삼성 다니고, 아들은 사업해요. 우리 애들이 내가 이 일 한 줄 알면 큰일 난당게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우리 어머니도 노인 일자리 사업이라고 여기저기 도로의 꽃을 심으러 다니십니다. 애들 아빠가 하지 말라고 수십 번 말해도 소용없더라고요. 집에서 놀면 뭐 하나요? 일하면 재미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우리 어머니도 남편 몰래 노인 일자리 사업을 다니셨다. 남편이 화가 나서 그만하라고 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에서 놀면 뭐 한다냐? 돈도 돈이지만 나는 사람들이랑 이야기함서 노는 게 좋아야. 상관하지 마라."라고 하셨다. 늙으면 정말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까? 난 아닐 것 같은데  말이다.




우리 병실에서 언제나 대부분의 대화는 뽀글이 할머니께서 시작했다.

 뽀글이 할머니께서  매일 아침 자신보다 어린 환자들에게 "어젯밤에 내가 코 많이 골았지?"라고 물었다. 사실 뽀글이 할머니는 밤낯을 가리지 않고 눕기만 하면 코를 골았다. "아이고, 잠 와"하고 침대에 누우면 이내 코 고는 소리가 병실에 싹 퍼진다. 정말 희한했다. 뽀글이 할머니께서는 원래 옆병실 환자였단다. 그런데 눈찌져진 아줌씨가  할머니가 코 골아서 잠 못 잔다고 난리난리였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 아줌씨 때문에 눈치 보여 이틀을 제대로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기에 간호사에게 부탁해 병실을 옮긴 거라고 했다.  할머니께서는  맨날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이 병실은 누구 하나 코 곤다고 눈치 주는 사람 없어 고맙다고 하셨다. 얼마나 눈찌져진 아줌씨가 눈치를 줬으면 할머니께서 아침마다 그런 말을 하셨을까? 나는 할머니가 짠하게 느껴졌다. 할머니 말이 끝나면 할머니보다 어린 4명의 환자 중 한 명이 "어머니, 괜찮아요. 일부러 코 고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걸로 미안해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예쁜이 할머니께서는 "언니 여럿이 쓰는 병실에서 코 골 수도 있제. 그런 꼴 못 보면 1인실 써야지. 뭐 잘났다고 그 아줌씨는 그런당가?  다인실 씀서 그런 말 하면  쓰제. 뭐라고 그래 불제 가만히 뒀는가? 나한테 걸렸으면 뼈도 못 추리제. 그 아줌씨 운 좋았구먼"이라고 흥분해서 말했다.  50대 뜨개질 아줌마는 "다인실이 공동생활인디 그것도 이해 못 하면 안 되죠. 징하게 웃긴 아줌씨네요."라고 대꾸했다.  우리는 뽀글이 할머니께서 그 못된 아줌마를 아줌씨라고 불러서  우리도 그 아주머니를  아줌씨로 지칭했다.


예쁜이 할머니는 "나는 이상하게 헛소리를 많이 해. 그러제?"라고 물었다. 사실  이쁜이 할머니께서는 매일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잠꼬대를 변동비율 간격으로 하셨다. 나는 처음에서 뭘 묻는 말인 줄 알고 두어 번 대꾸도 했으나 나중에는 잠버릇이다는 것을 알고 무시했다. 이쁜이 할머니께서는  "근디, 내가 엄마를 부르는 헛소리를 많이 하제? 우리 집 양반이 그러드라고. 나중에 치매 걸리먼 엄마 찾겠다고. 아무래도 내가 울 엄마가 보고 싶은가 봐." 그러면 또 예쁜이 할머니보다 어린 3명 중 한 명이 "어르신 쪼끔 헛소리를 하긴 하는데 잠자는데 방해는 안 됩니다."라고  상냥하게 말했다.


 뜨개질 아줌마는 "전에 한 어르신은 밤 12시만 되면 씻어서 그 물소리 때문에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몰라요. 또 그 어르신은 다른 환자들이 침대에서 뽀시락뽀시락 거리면 진짜 화냈당게요. 무서웠어요. 침대에 눕기가 겁났당게요. 목소리도 카랑카랑해가지고. 당신 소음은 괜찮고 딴 사람 소음은 시끄럽고. 진짜 웃긴 어르신이었어요. 침대에 누우면 어르신 눈치 보여 움직이지도 못했당게요. 지금 병실에 있는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화내는 사람 없어서  좋아요. "라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뽀글이 할머니께서 "다 우리가 복을 잘 지어서 그라제."라고 말하고 이쁜이 할머니께서   "그라제."라고 답했다. 그러면 나머지 환자들이 병실이 떠나갈 정도로  웃어댔다.  


하루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다섯 명이 무표정한 얼굴로 뜨개질 아줌마 병문안을 왔다. 뜨개질 아줌마가 불편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방문객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50대 여성이 몸은 좀 어떠냐고 물었다.  뜨개질 아줌마는 매우 경직된 표정으로 괜찮다고, 걱정시켜 미안하다고 했다. 그들은 20분 같은 5분을 머물다가 갔다. 대화 중간중간 웃음소리가 났지만 인위적이었다. 그들이 떠나고  나는 조심스럽게 "직장 동룐 가봐요. 전혀 안 친해 보여요."라고 말했다. 뜨개질 아줌마는  "맞아요. 뭐 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모르겠네요. 나 입원한 거 확인하려고 오나? "라고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별로 예능이고 드라마고 안 보기도 하고 텔레비전에서 우스갯소리로 상대방을 고 막말하는 것을 질색한다.  티비 소리는 솔직히 밤에는 그래도 참을만했다. 하지만 낮에는 힘들었다. 청력이 떨어진 어르신들이 티비 소리를 엄청 크게 틀어놓았었다.  그러나 내 맘대로 티비를 끌 수 없었다. 어르신들이 우리  엄마 같았기 때문이다. 뽀글이 할머니께서 날 이쁘게 봐 퇴원 선물로 티비 리모컨을 주었지만 자진해서 로맨스 할머니께 상납했다.  병실에선 나의 나이권력이 가장 낮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병실이 시끄러우면 병동 휴게실에서 멍 때리거나 병원 밑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그럭저럭 견뎠다.




내가 입원해 있는 9일 동안 병실에서는 환자들 간에 한 번도 시끄러운 소리가 난 적이 없었다. 항상 웃고, 할머니들 이야기 듣고 또 듣고, 연예인 이야기 하며 즐겁게도 지냈다.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최소 다섯 명 중 세 명은  맞장구를 쳐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병실 사람들은 서로서로 불쌍하게 생각하고 단체 생활이니 불편해도 그러려니 했다. 사람들이 다 수더분하고 좋았다. 나랑 뽀글이 할머니는 다리를 다쳐서 식판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언제나 조용한 아줌마 하고 뜨개질 아줌마가 우리 식판 날랐다.


우리 아파트에 내가 호랭이라고 이름 지은 길냥이가 있다. 아파트를 산책하는 사람들마다 츄르나 사료, 고양이 간식을 가지고 와서 호랭이에게 준다. 호랭이는 사람이 간식을 가지고 가면 사람 곁으로 와서 몸을 비비고 간식을 얻어먹는다. 길냥이도 환경에 적응한다. 환자들도 입원하면 병원생활에 적응해 간다. 나도 병실 생활에 그렇게 적응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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