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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un 23. 2022

사이를 사랑하기

까미노 데 산티아고 이야기_외전 / Day 3 / 101.7km

    거의   남짓, 나는 계속해서 산길을 걸었다. 지난 여행의 순간들을 전부 합쳐도 바다를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한참 전 일이다. ‘여행 = 바다라고 말할  있을 정도로 바다와 여행은 떼려야   없는 관계일텐데, 심지어 나는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임에도, 바다를 본지  오래되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오늘 오랜만에 바다를 본다는 것에 설렜던 탓일까? 아니면 그저 오늘 아침에 마신 커피가 준 각성 효과 때문일까? 하루 종일 계속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발걸음이 정말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오늘의 루트


    우선 오늘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다.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오늘의 길.


    사실 오늘 아침엔 어제의 날씨에 이어서 조금 흐렸다. 어젯밤, 내일은 아주 맑을 날씨이기를 바랐던 나의 기대와는 완전히 반대의 날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단호한 날씨 속에서 조금의 희망 느낄 수 있었는데, 구름 사이로 조금씩 아주 청명한 하늘색 색깔이 보였기 때문이. 왠지, 구름들이 금세 물러가고  진한 하늘색으로 하늘이 덮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안개와 시작한 오늘 하루


    오늘의 길은 왠지 모를 익숙함이 있었다. 가파르진 않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자주 있는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제주도의 오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항상 오르막 위에는 안개가 껴있었고,  안개들이 물러가면서 스리슬쩍 아름다운 풍경을 내비치는  또한 제주도의 모습과 꽤 닮아 있었다. 나는 마치 제주도에  있는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오늘 하루 동안 눈에 가장 많이 담았던 것은 숲이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의 모습을 안개 사이로 자주   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넓은 들판들을 많이 보았는데,  들판에는 예쁜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꽃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무슨 꽃인지는   지만, 유채꽃, 개나리  같은 노란빛을 품은 꽃들이 나의 눈을 시리게 했다. 마치 어두컴컴한 방을 나와 햇살을 마주 했을 때처럼, 안개가 걷힌 뒤에 보이는 노란 꽃들의 찬란한 모습  눈부셨다.

    게다가 오늘은 숲과 들판뿐만 아니라 바다도 있었다. 세상의 , 그러니까 바닷가를 향해서 가고 있다는  증명이라도 시켜주듯이, 피스테라로 향하는 코스의 마지막 부분 계속해서 바다와 함께였다. 숲과 들판만이 보이던 길의 끝, 그리고 바다가 시작되는  포인트에서는 바다와 시소를 타기도 했다.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가벼워진 발걸음,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길을 걷다 보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아래로 흔들렸는데,  순간이 마치 바다와 시소를 타는 기분이었다.


    내 시선이 위로 튀어 올랐을 땐 바다가,

    그리고 다시 내려왔을  울창한 숲과 노란 꽃이.


see - saw


    시원하게 뻗어있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의 모습, 눈이 시렸던 들판 위의 노란 꽃들부터, 오랜만에 보는 바다의 색깔, 오랜만에 듣는 파도소리, 그리고 오랜만에 맡는 바다의 냄새까지.


    풍경의 풍요 속에서 오늘 하루를 보냈다.



    아름다운 풍경의 끝에는 오늘의 목적지인 피스테라가 있었다. 피스테라에 도착해서는 지난번에    봤던 경험을 살려, 짐도 풀지 않은  바로 마트로 향했다.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기 위함이었다. 아직 세상의 , 0km라고 표시되어 있는 마일스톤을 보기까지는 거리가  아 있었지만, 세상의 끝에 앉아 맥주를 마셔야 하니까, 나를 위한 축배를 어야 하니까 말이다. 덕분에 맥주의 무게만큼 가방의 무게가 늘어났지만, 축배를 위해서라면  정도는 당연히 참아   있었다.

    그렇게 나름의 축배의 준비를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마일스톤 도착 1km 앞두고, 하루 종일 하늘을 뒤덮고 있었던 구름들이 전부  사라졌다. 하늘이 의 완주 축하라도 하는 것처럼 무지개까지 띄워가며 내게 웃어주었다. 그런 호화로운 환영식을 받으며 나는 드디어 0km 마일스톤을 찾아냈다.


    세상의 끝에, 드디어 도착했다.


    마일스톤과 기념사진을 찍고,  비석을 넘어서 조금  걸어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다 바다와 가까이 있을  있는 공간이 나온다. 절벽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어쩌면 조금 아찔한 곳일  있겠지만, 나름 바다를 바라보며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있는 공간이 . 나는 그곳에 앉아 오늘의 해가   때까지 맥주를 마시며 나의 성공을 축하했다.


    글쎄, 내가 바라본 태양이 꼭 오늘의 태양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산티아고 순례길의 끝을 알리는 차임벨 같은 노을은 아니었을까.

    정말 멋진 안녕이었다.

    말뜻 그대로의 Good bye를 했다.


오늘 만났던 무지개 그리고 세상의 끝
마일스톤과 정복자의 모습


    누군가는 걷는  가장 인간다운 행위라고 하더라. 맞다. 차를 운전하고, 지하철, 버스 같은 공산품을 탑승하여 이동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걷는  인간다운 행위이긴 하다. 조금 느릴  있겠지만 어딘가로 이동하는 가장 인간다운 방법은 정말로 ‘걷기'일지도 모른. 물론, 인간답다는 사실이 무조건 좋다고 말할  없겠다. 가끔은 기계가 주는 편리함이 좋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다운 일을 했기 때문일까, 걸을 에서야 재밌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일례로 어제 내가 딱따구리를 바라봤던 일이라던가, 달팽이와  처지를 비교해봤던 일이라던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안개의 냄새를 맡을 수도 있고, 노란 꽃에 눈을 부셔  수도 있고,  정말 많은 재미난 일들이 많이 생긴다.

    확실히 버스를 타고 피스테라에 왔던 지난번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그때 봤던 바다와 똑같은 바다이고, 내가 흔히 보던 노을과 똑같은 노을일 텐데,  발로 직접 걸어 세상의 끝을 마주하는 것은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글쎄, 세상의 끝에 도착했다는 결과보다는, 내가  끝에 어떻게 도착했는지  과정이  중요해서 그런  아닐까? 나는 오늘 바닷가를 마주하기 전까지 숲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때 ‘이렇게 걷다가 만나게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하며 바다의 모습을 계속 상상하며 곱씹었다. 이렇게 곱씹는 과정이 있었던 곳이기에 별거 아닌 이곳이 ‘세상의 '이라는 별명을 가질  있었던  아닐까. 사실 인생이라는 , 이처럼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한  아닐까?

    가장 인간다운 이동 법, 걷기. 천천히 걸었기 때문에, 과정을 향유했기 때문에, 이처럼 아름답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니 세상의 끝이라는 수식어에는  의미가 을 수도 있겠. 지구는 둥그니까, 사실 세상의 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 이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까미노가 오늘부로 끝난 일이 그렇게나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또한 다른 무언가의 시작점에 서있고, 그리고  나아가 인생의 과정에 속해 있을 뿐이니 끝이라는  그렇게나  의미가 있는 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 내가 죽기 전까지 끝이라는  없다. 나는 계속해서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고, 과정의 연속 속에 놓여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인생이라는 과정을 조금  즐기고 음미해야겠다. 글쎄, 이 과정의 끝을 죽음이라 친다면,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아름다운 과정을 만들고, 그 과정들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즐기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가며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을까. 탄생과 죽음의 사이, 지금의 시간, 지금의 나.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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