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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하바 Apr 20. 2021

기억은 잊혀도, 그림은 남아있다.

아이가 기억하는 미국


20대 중반 혼자 떠난 파리와 런던 여행에서 부러웠던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두 손 꼭 붙잡고 보폭 맞춰 걷는 다정한 노부부들, 둘째는 어디서건 자연스레 앉거나 누워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 마지막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였다. 


고작 9일의 시간밖에 없었던 나는 '1시간에 주요 작품 훑어보기', '꼭 봐야 할 작품 몇 선' 등등의 MP3 파일들에 의지해 루브르니, 오랑주리니, 피카소 미술관 등등을 숙제하듯 매일 종종거렸다.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 식 감상. 그런 주제에 블로그에 "방문 후기"를 쓰기 위해 사진만 열심히 담았다. 


귀국을 단 하루 남겨둔 날이었다. 그날 역시 쫓기는 듯한 마음으로 테이트 모던을 바쁘게 누비고 있었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우르르 전시실로 들어왔다. 인솔 교사로 보이는 사람이 이제 곧 작품 설명을 하고 다음 전시실로 이동하겠거니 생각하며 그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 후기 작성에 필요한 사진을 찍는 데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으니까. 학생들은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종이와 펜을 꺼냈다. 관광객의 뻔뻔함으로 슬쩍 훔쳐보니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하염없이 작품들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기대와는 달리 교사는 그 어떤 가이드도 없었고, 결국 조급함에 기다리다 자리를 먼저 뜬 건 역시 나였다. 


조용히 사각거리던 펜 소리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시간 그 전시실의 모습. 스물 중반의 남자 친구도 없던 처녀가, 아이가 태어나면 미술관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 골라 몇 시간이고 같이 앉아 그림 그리기를 해보겠다 다짐하게 할 만큼 생경한 충격이었다.






참말 다행히도 내 딸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이 세상에서 종이랑 펜을 다 없애 버리면 난 너무 슬퍼서 매일 울 것 같아." 아이를 키우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후회할 일들이 많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뒷정리할 각오로 물감이며 펜들을 다양하게 쥐여줬던 것만은 잘했다 칭찬해주고 싶다. 


아이 손에 힘이 생겨 펜으로 뭐라도 끄적일 수 있게 된 때부터 아이의 그림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미 아이 짐으로 가득한 가방이지만 외출할 때면 꾸역꾸역 종이와 펜은 항상 챙겨 넣었다. 미국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을 아이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세 살 아기가 다섯 살 어린이가 되는 시간일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아이의 기억은 잊혀도 내가 담은 사진과, 아이가 그린 흔적들이 우리의 시간을 늘 그 자리에 있게 해 준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은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도 아이의 그림에는 남아있다.


미국 생활 동안 아이가 그린 그림은 족히 몇 천장은 된다. 튤립 가득한 농장에 엎드려 아이는 처음 튤립을 그렸고, 벚나무 아래서는 함께하는 친구를 그렸다. 가을 단풍이라며 물감들 섞어 색을 만들어냈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폭포 아래 배를 타고 지나갈 때 느꼈던 공포를 표현한 그림을 그렸다. 프린스턴 대학 미술관에서는 친구와 나란히 앉아 그림을 그렸고, 엄마와 함께 그림을 그린 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아빠와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디자이너가 되어 그린 그림도 남겨두고 왔다. 자유의 여신상도, 자연사박물관의 거대 코끼리도, 디즈니 공주님들도, 칸쿤에서 매일 저녁 보았던 공연들도 아이는 그림으로 기록했고, 기억했다.


어느 날엔가 아이는 미술관 천장에 매달린 조형물이 마음에 들어 그리고 싶다고 했다. 앉아서 올려다보자니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미술관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려도 되느냐 물어왔다. 아뿔싸, 이십 대 중반의 내가 꿈꾸던 모습에 이런 상항은 포함되지 않았었다. 그래도 아이가 미술관을 어렵지 않게 대했으면 싶어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작품을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미술관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던 순간은 기억한다. 






귀국 후에도 아이와 미술관을 자주 찾았다. 사실 유럽이나 미국의 박물관, 미술관은 마냥 여유로우냐 하면 그건 아니다. 루브르의 모나리자 앞에서, 모마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서 사람들은 십몇 년 전 유럽에서의 나와 같았다. 보기 힘든 작품이니까. 몇 년에 한 번씩 방한하는 전시회장은 같은 이유로 늘 북적이고, 당연히 작품 앞에 앉아 종이를 펼칠 여유는 없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유명한 전시보다 아이는 원하면 한 작품 앞에 한참 머무르기도 하고, 다시 돌아가 볼 수도 있는 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들을 마음먹으면 언제고 가서 볼 수 있는 유럽과 미국 아이들이 부러워지는 이유다. 




미술관에서 그림으로 기록하다
자연을 그림으로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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