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 조지아
이번에 조지아 여행을 하면서 여러 가지 재밌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솔직히 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 여름휴가철 여행을 준비할 때는 날씨에 민감한 편인데요. 제가 알아본 결과, 조지아는 건조한 날씨로써 한여름인 7~8월에도 그늘에만 있으면 아무리 더워도 견딜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수도 트빌리시는 낮에 돌아다니기 힘들 만큼 강렬한 햇빛이 하루 종일 도시를 비추고 있었고, 낮 최고 기온은 37도에 육박했습니다. 또한, 옛 조지아 왕국의 수도였던 쿠타이시란 도시에서는 낮 최고 기온이 42도에 육박했죠. 7월 말 8월 초 조지아 날씨는 정말 미친 듯이 뜨겁습니다. (산악지대 예외)
아마도 기후변화에 따라 지구가 더 뜨거워졌기에 그 여파가 여기까지 미친 것이겠죠?
그런데, 여기서 더 힘들었던 점은 '에어컨'이었습니다. 대중교통수단인 '마슈르카'에는 에어컨이 없었으며, 투어 차량을 이용할 때는 에어컨이 미미할 정도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택시 탑승 시 에어컨 사용 유무는 복불복에 가까웠죠.
차량뿐만 아니라 쇼핑몰도 실내 온도가 26~27도 정도로 맞춰진 듯했습니다. 더위를 식히려고 실내로 들어왔는데, 막상 제 몸에 열이 가라앉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됐죠.
여러 가지 이번 여행을 통해 '조지아 사람들은 에어컨 바람을 싫어한다'란 생각을 갖게 됐는데요. 투어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와의 대화 그리고 궁금해서 찾아본 여러 가지 자료에 따르면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바로 '건강 / 기후 / 효율성'이란 키워드로 압축해 볼 수 있겠습니다.
건강
(Health)
먼저 '건강' 이슈입니다. 일단 많은 현지인들은 '에어컨 바람이 감기나 두통을 유발한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차량을 밀폐된 공간이기에 그 유발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에 노약자나 어린이가 동승할 경우, 웬만하면 자연 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특히 이런 생각은 나이가 많은 조지아인 일수록 더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운전하는 사람이 나이가 많은 경우에는 에어컨을 틀고 목적지로 향하는 확률이 낮은 편이었죠.
게다가 '더위를 참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란 사고방식도 있어 마치 사우나에서 뜨거움을 참는 것 마냥 여름 나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자연 바람도 좋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조지아는 배기가스 합격 기준치가 낮았던 옛날 중고차량이 많아서 오히려 창문 열고 자연 바람을 맞는 게 더 안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네요.
기후
(Climate)
다음 이유는 '기후'입니다. 조지아는 유럽 지역과 마찬가지로 1년 365일 '기후가 비교적 온화하고 습도가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 국가 전반적으로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것이고요.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지만, 이런 전통적인 기후 때문에 에어컨 보급률을 약 10%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인하여 여름철 더위가 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수준의 강력한 폭염으로 바뀌면서 점차적으로 에어컨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데요. 그렇지만,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건강에 대한 인식' 때문에 쉽사리 극적으로 트렌드가 바뀌진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조지아 여행을 하다 보면 '산악지대'가 많아 해만 지면 선선한 편이라 굳이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고 또 있어도 잘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렇지만, 이제는 정말 해발 2,000m가 넘는 스테판츠민디와 같은 산악지대 위치한 도시를 제외하면 에어컨은 필수인 기후가 됐습니다.
7월 중순까지는 그래도 낮 최고 기온이 트빌리시 기준 28~30도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7월 말이 되니 35도를 넘어가버렸죠.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한낮에는 차에서도 건물에서도 시원한 곳이 많지 않아 쉽지 않았던 7월 말 조지아 여행이었습니다.
효율성
(Efficiency)
마지막 키워드는 '효율성'입니다. 일단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조지아에는 오래된 중고차가 많습니다. 실제로 보면 아직도 굴러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오래된 모델이 많은데요.
오래된 차량이나 저가형 저렴한 모델의 경우 기능이 떨어지기에 에어컨 성능도 안 좋고, 고장도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차량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특히 연식이 오래된 차량은 에어컨을 작동할 경우 기기에 그 부담이 커지겠죠?
앞서 살펴본 이유의 연장 선상으로 에어컨을 가동할 경우 차량 연비가 확연하게 떨어져 사용하지 않기도 합니다. 비교적 최신 차량인 제 차도 에어컨을 강하게 돌리는 한여름에는 연비가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이는데요. 아무래도 오래된 차량은 그 효율이 더 떨어지는 게 당연한 사실입니다.
건강, 기후, 효율성이란 크게 세 가지 키워드 때문에 정말 조지아 사람들은 참다 참다 못 참고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에어컨을 가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숙소의 경우 에어컨이 있지만, 냉매가 약한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고요. 그래도 웬만한 도시 숙소에서는 에어컨 작동이 잘 되니, 하루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를 생각하면 마치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름 조지아 여행, 날씨와 후하지 않은 에어컨 인심 때문에 다소 힘들었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늘 아래에만 있다면 더워도 걸아 다닐만한 것은 사실이고요. 그렇지만, 햇빛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지옥불을 만난 것처럼 타는듯한 뜨거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아는 너무 흥미로운 여행지였는데요. '알쓸신잡, 조지아'에 대하여 다음 글에서 한 번 더 알아보고 도시 별로 이 나라의 매력에 대해 하나씩 깊숙이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