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롱 Nov 14. 2019

#28. 아직 못다 한 이야기

좋은 분? 나쁜 놈?

 열흘 만에 베토벤 선생님을 다시 만난 곳은 수술실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건 아니라 터덜터덜 걸어 들어가서 간호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썼다. 공기가 차가운 방 한가운데 침대가 있고 그 위에는 TV에서 보던 무서운 조명이 달려 있었다. 누워서 초록색 천을 얼굴까지 덮었다.

 "준비 다 됐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그분이 오셨다. 몇 가지 수치를 확인하고 수술이 시작됐다. 부분 마취라 정신은 말짱했다.

 "위에서 전화 왔는데 아까 검사받다가 기절했다면서요? 왜? 아팠어요?"

 "갑자기 귀에서 삐 소리가 나면서 어지러웠어요."

 "엄청 긴장했구먼. 또 그러면 안 돼요. 자면 안 돼요."

 "..."

 "대답해야지. 크게!"

 "네에에에에엨!!"

 선생님이 갑자기 천을 휙 걷더니 아는 체를 했다.

 "귀청 떨어지겠네! 아, 신혼여행?"

 "네에."

 다시 앞이 깜깜해졌다.

 "자, 지금 아파요?"

 "네, 아파요."

 "아프겠지. 가슴을 쨌는데."

 "..."

 "또 대답 안 하네."

 "아파요!!!"

 "대답하라고 했지, 짜증 내라고 안 했어요."

 "헤헤."

 "신혼여행 재밌었어요?"

 "음... 소매치기 만났어요."

 "아이고. 가방 뺏겼어요?"

 "아니요. 무슨 종이를 보여주면서 제 가방을 열었어요."

 "가방을 열었다고?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소리 질렀어요. 엄청 크게."

 "프랑스가 쩌렁쩌렁 울렸겠네. 그래서 뭘 훔쳐 갔어요?"

 "박물관 팸플릿이요."

 "뭐라고?"

 "저한테 돈이 하나도 없었어요. 다 남편이 갖고 있었어요."

 "남편이 현명하네."

 "제가 똑똑한 거예요."

 "알았어요."

 기계음만 울리는 수술실에서 베토벤 선생님과 나의 만담이 이어졌다.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던 의사 선생님들이 큭큭 웃는 소리가 몇 번 들렸다.

 "조직은 잘 떼어냈고요. 그 안에 석회가 들어 있는지 확인하러 보냈고 지금은 열었던 부분 닫고 있어요."

 "닫았는데 조직에 석회가 없으면 어떡해요?"

 "다시 열어야지, 뭐."

 "..."

 잠시 후 전화가 울렸다.

 "석회 잘 들어있대요. 이제 마무리할게요."

 곧 봉합이 끝나고 베토벤 선생님이 수술실을 떠났다. 나는 조금 더 누워 있다가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엄마를 보니 괜히 코끝이 매웠지만 씩 웃었다.

 "나 가슴에 칼빵 생겼어."    

 

 따뜻할 줄 알았던 날씨는 쌀쌀했고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다. 야식으로 가져간 컵라면을 끼니로 아껴먹어야 했다. 마지막 날 아침 눈을 뜨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비행기 안에서 팔다리에 두드러기가 났고 두어 번 먹은 걸 게워냈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엄마는 게이트 밖으로 휘청휘청 걸어오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랐다.

 여행에서 돌아온 날 저녁, 집에서 오랜만에 배부르게 김치찌개를 먹고 선잠이 들었다. 꿈인 듯 멀리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나 동이는 이제 다 끝난 것 같겠지만 난 아직 아니야. 모레 수술 잘 받고 결과까지 나와야 두 다리 뻗고 자겠어. 내가 대신해줄 수 있었으면."     

 

 보름 후,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았다. 이번에는 진료실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베 선생님의 안색을 살폈다. 좋은 분인가요, 나쁜 놈인가요.

 "암 아니에요. 걱정 그만!"

 실밥을 툭툭 뜯으면서 선생님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너무 급하게 다니지 말라고.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몇 분은 햇빛을 보라고. 6개월 뒤에 다시 만날 때는 튼튼해져서 오라고. 

 병원을 나서는 순간, 한 달 넘게 시달렸던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됐다. 그리고 오직 한 사람을 생각했다. 엄마, 우리 이제 아프지 말아요. 

                                                                                                                                                    <끝>     

이전 27화 #27. 부부의 만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