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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파파 Jan 20. 2021

#5 프로불면러... 편히 잠들다.

아빠일기


 '내일 친구 만나면 꼭 물어봐야지.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게 좋을까? 오늘은 내가 좀 심했나?...' 

깊은 밤 꼬리에 꼬리를 문 잡생각들이 불면의 늪이 되어 나를 잡아당긴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꼴딱 꼴딱 넘어가려는 찰나 "띠링~띠링!"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날아온 광고문자 한 통이 나를 살린다. 그렇게 정신이 들면 좀비 마냥 비틀거리며 생수통에 담긴 물을 들이킨다. 주위가 어둡고 조용하다. 새벽 2시가 돼야 잠드는 윗집 딸내미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아놔...

나는 '프로 불면러'다. 


 수능을 하루 앞둔 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불면증이 있단 걸 알기에 뒤척일 시간까지 계산해 무려 8시 반에 부모님께 큰 절을 고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던 나는 결국 새벽 3시라는 시간에 지쳐 잠들었고 결국 수험장을 나오며 격하게 눈물을 쏟았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잠만 잘 잤더라도 내 인생이 좀 더 수월했을 텐데 란 후회를 하고 있다. 


 불면증은 결혼 뒤에도 고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더 새벽잠 없는 아내 덕분에 한층 업그레이가 진행 중이었다. 모자란 잠은 낮에 30분 정도 눈을 붙이는 것으로 채웠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가연이가 태어났다. 평화로웠던 우리의 생활패턴은 폭탄테러를 당한 듯 와장창~무너졌다. 3,4시간마다 자명종처럼 울어대는 딸은 나와 아내를 스파르타식으로 기상시켰고 잠이 부족해 딱 한대만 더 맞으면 엔딩을 고할 게임 캐릭터 마냥 비틀댔다.  '아... 조상님들은 천재구나. 잠이 보약이란 사실을 몇 백 년 전부터 알고 계셨어!!' 그렇게 큰 교훈을 얻으며 버티고 버텨 100일이 지났을 무렵... 나는 다른 인간이 되어 있었다.  


 널찍한 침대에서도 불면에 침대 킥 날리던 내가 구석진 모퉁이에 앉을자리 하나만 생기면 고양이 마냥 비집고 들어가 정확히 3초 만에 코골이와 대량의 침을 발사하며 잠이 들었다. 나를 묶어두던 그 수많던 잡념은 온데간데없다. 원효대사는 잠결에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고 나는 딸의 가혹한 분유셔틀 덕분에 해탈했다. 어릴 적 눈만 감으면 자던 아버지가 미워 뒤에서 욕 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깊은 반성을 하고 있다.  또 그동안 내가 침대에서 허비한 시간을  일에 쏟아부었다면 새 차 한 대는 뽑았을 텐데 라는 후회가 수시로 밀려온다.  등가교환의 법칙은 참말로 정확하다. 세상은 나에게서 잠을 뺏어갔지만 불면을 말끔히 잠재웠다. 과거의 나를 알던 아내는 종종 물어본다. "자기, 요즘은 잘 자네. 불면증은 없어??" 


"뭐? 불면증?? 그거 먹는 거야?"


나는 이제 진정한 프로잠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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