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에서 한 나라로 이동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결정이다.
내가 살던 집과 일하던 회사, 주변의 사람들, 경력 등 모든 것을 두고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난다는 것은 꿈을 꿀 수는 있어도 실행하기가 참 어렵다.
나는 풍족한 집에서 자란지 알았다. 항상 없이 사는 사람들과 비교를 하면서 자기만족에 빠져서 변화를 즐기지 않는 부모 밑에서 20살 대학을 입학할 때까지 토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학교에서 모의시험을 치운 첫 토익 시험에 신발 사이즈가 나왔던 사람이었다.
원어민을 만난 것도 대학 영어 수업이 처음이었다.
I Love Soju.
원어민 시간에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을 하라고 하면 소주만 외치던 그런 마음이 텅 빈 사람이었다.
술을 왜 마시는지 담배를 왜 피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멋있어 보이기 위해 고등학교 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20살이 되는 해방식 날 직 후 닥치는 대로 하며 몸, 돈 그리고 시간을 낭비했다.
인간관계도 그러했다.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소위 말해 인싸가 되기 위해서 환장했었다. 항상 술 마시는 곳에 꼭 참여를 하려고 했고 수업 중에도 나에게 집중이 되도록 농담을 하고 돈이 있어 보이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생활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싸가 아닌 광대에 불과했던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우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광대는 사람들에게 웃음만 안겨주고 아무도 광대와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했던 행동은 사람들이 나를 떠나가게 만들었고, 그런 쿨병에 걸린 아이에게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외로웠다.
나를 사랑해 주는 남자친구를 만났을 때도 언제 이 관계가 끝이 날까 두려워서 일부러 못되게 굴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닌 별로인 사람이었다.
내 이런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겠어?
술을 마시면 술을 잘 먹는다고 칭찬받는 것이 좋아서 자제를 하지 못하고 급하게 필름이 끊기고 토할 때까지 마셨다, 술만 마시면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렇게 막 대해도 나에게 매달려 있기를 바랐고 그것이 나를 있는 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랑인지 알았다. 서로 존중을 해야 하는 관계인지 몰랐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한심했다.
왜 나를 학대하는 행동을 했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이 나를 학대하는 행동인지 전혀 몰랐다고 대답한다. 그것이 멋지고 좋은 행동인지 알았다. 내 인생의 길잡이가 돼줘야 하는 부모님마저 본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아빠는 텔레비전만 보고 아무것도 시도하고 싶지 않아 했고 엄마는 심심한 집을 떠나 혼자 즐기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자식들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여유도 없었다. 돈을 들여 학원을 보냈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니 화만 냈다. 우리에게는 공부하라고 해 놓고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 놓고 보는 부모였다.
그렇게 비정상적인 상태로 길러졌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다.
나의 위치는 딸에서 엄마로 변하였고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마당에 아이까지 책임져야 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나도 살기 벅찬 세상에
너희들을 나오게 해서 미안해...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이 살기 힘들었었다. 엄마는 아이를 봐줄 테니 회사를 다니라고 했지만 나에게 본인의 자유시간을 앗아갔다는 명목으로 화풀이가 심해졌다. 그렇게 아이까지 내팽개치고 열심히 일해서 살아도 돌아오는 것은 더 큰 욕심뿐이었다. 부모님은 나보다 10배는 부자인데도 나에게 용돈을 요구했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여 주위를 보면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 투성이였다.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서 사는 것 같았다.
사는 것은 축복일까? 불행일까?
사람들은 죽음이 불행하다고 하던데, 우리는 죽기 위해서 사는 것 같아 보였다.
극심한 우울증에 힘들어할 때 책이 나에게로 와주었다.
책이 가져온 효과는 대단했다.
돈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교육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경쟁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사랑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돈, 교육, 경쟁, 술
모두 한국에서는 찬양하는 것들...
문제는 사회였다. 내가 사는 한국 사회는 진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을 가르치고 있었다.
한국에서 인생의 목표는 돈이었다. 하지만 돈을 좇으면 쫓을수록 불행해진다.
행복은 돈과 인간관계, 시간, 취미, 건강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로 측정을 하는데, 한국은 무조건 돈이 최고다.
아이들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
8살 짜리 깜찍한 아이들이 모여 부모를 욕하고 6살 짜리 동생을 욕한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면서 어여쁜 입에서 끔찍한 소리가 나온다.
우리 엄마 아빠가 최고라고 사랑한다고 할 나이에 엄마 아빠에 대한 험담을 서로 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것을 빼앗고 경쟁하면서 본인만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자랑하는 사회,
남을 헐뜯고 남보다 높이 올라가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채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인간관계,
돈이 많아도 언제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하는 경제 구조,
가장 따듯해야 하는 관계이지만 불신과 불화, 내 희생에 대한 보상 만을 중요시하는 가족 관계,
술과 음식을 강조하여 놀고먹는 것이 인생의 낙인 것처럼 되어버린 사람들의 행복,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생각할 수 없게 하루 종일 남의 일을 보게 하여 정신을 빼앗는 미디어들,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 속에서 모든 것을 멘탈의 책임으로 돌리는 심리학,
내가 잘못된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 이 사회였어.
내가 살던 곳은 비정상의 세계였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는다고 해도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다.
그럼 자연인처럼 자급자족을 할 텐가?
부도 없고 교육도 없는 아프리카에 가서 살 것인가?
하루에 감자 한 개로 만족하면서 세상을 살 것인가?
그럼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명상을 하려고 해도 내 안의 두려움만 올라왔기에 요가 선생님에게 명상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큰 욕심은 없고,
교육에 대한 비용과 의료 그리고 노후에 대한 걱정만
사라졌으면 좋겠어...
사람이 죽으면 돈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타인을 미워하거나 경쟁하지 않고 내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교육비, 의료비, 노후생활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살게 된다면 내 아이를 이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맞추어 가위질을 하지 않고 태어난 그대로 살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을 사랑하며 키우고 싶어서,
부자가 되는 것보다는 시간의 흐름대로 인생을 살고 싶어서,
탐욕스러워지기보다는 너그럽게 살기 위해서,
경쟁에서 졌다기보다는 경쟁이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
30년 넘게 살았던
한국을 떠나기로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