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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맘 Jan 16. 2024

캐나다 시골 대가족이 부럽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 서양은 대부분 핵가족이라고 생각했었다.  

시부모 스트레스도 없고 부모와 멀찍이 살고 서로 간의 터치도 없이 일 년에 한번 얼굴을 보면서 사는 관계인지 알았는데, 캐나다 시골에 살다 보니, 굉장한 대가족들이라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과 맥도날드나 DQ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외출을 나온 아이들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키즈카페를 갈 때에도 여름철 공원이나 놀이터, 수영장을 갈 때에도 상당히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할아버지 혼자 유모차를 끌고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은 나에게는 익숙한 광경이 아니지만 저절로 마음이 따듯해지면서 흐뭇한 웃음이 지어진다. 


한국은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살아가기에 대가족이 꼭 필요한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산업화가 발달하고 집에서 행해지던 많은 일들이 외부로 이전 시켜서 흔히 말하는 창조 경제를 만들어야 했기에,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작정하고 핵가족화 시켰다. 생각보다 우리가 핵가족화된 것은 얼마 안 되었다. 
 
예를 들어 한 가족이 방 3개짜리에 산다면, 한방에 한 가족씩 살아서 3가족이 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불편하다고 하고 미개하다고 치부해 버린다. 
만약 3대가 함께 산다면, 아이를 돌보는 일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맡아서 하고 다른 구성원들은 경제 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 정서적으로는 엄마 아빠한테 혼이 나면 이모가 편을 들어주며 위로해 주고, 아이를 키울 때도 힘든 일은 나눠서 할 수 있다. 집 하나에 여러 명이 살기에 관리비도 3분의 1로 줄어들고, 가구를 사는 일도 가전제품을 사는 일도 식비까지 모든 것이 줄어든다. 아이를 낳고 키워 본 사람은 알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하루가 빨리 가는데, 집에 혼자 아이와 있을 때는 시간도 가지 않고 고립된 느낌이 들어 우울증까지 온다. 산후 우울증의 가장 큰 해결 방법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 사회는 우리의 끈끈한 유대감을 두고 보지 않았다. 서로를 불신하도록 최대한 노력을 했고 그 중심에는 간접경험을 함으로써 불신의 씨앗을 퍼트리는 미디어가 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필요 없는 것에 돈을 쓰게 되고, 당연한 것들이 특별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우리 부모님만 해도 아이를 키워 준다고 말을 하며 돈에 대한 요구를 먼저 했으니... 옛날에 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주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것이 희생이 되고 가족 간에도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이 세상에 아이를 돌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는 것을 느꼈는데 나와 타인의 생각은 다르니 참 신기한 일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 덕분인가? 돈에 대해 걱정이 없어서 일까? 아이를 위한 복지가 많아서 일까? 상하관계가 덜 해서 일까?  캐나다 시골은 아직까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자, 손녀를 돌본다. 

12월에 아이들 발표회를 하는 날에 오전 오후가 나누어져 발표를 했었는데,  오전에는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구경을 하러 왔고, 오후에는 온 가족이 출동 한 경우가 많았다.
어느 7살짜리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삼촌까지 함께 구경을 하러 와서 이 5명을 오고 가면서 연신 안기고 뽀뽀하면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감정 이입이 잘 되는 스타일이라,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까지 사랑을 받는 것처럼 마음이 벅찼다.

한국인이 캐나다 이민을 오는 이유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부모님, 시부모님에게서 멀어지려는 이유도 있다고 하는데, 필리핀, 아프리카 사람들이나 인도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민도 대가족이 온다. 한국도 올 수 있는데, 안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필리핀 친구가 크리스마스 파티라고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사진을 보면 대가족의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부럽다. 




나도 대가족이고 싶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자아가 너무 강해서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라, 차라리 시어머니가 편하다. 
하루는 시어머니께, 캐나다에 오셔서 몇 달간 지내시고 가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시어머니가 오시면 밥숟가락만 하나 더 올리면 되는 일이라 어려운 일도 아니고 아이들이 조 부모님의 사랑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을 꺼냈는데, 시어머니는 단칼에 거절하셨다.


난, 영어 못해서 안돼!



영어 못한다고 누가 무시하는 것도 아닌데, 오시면 ESL 수업도 보내드리고 아이들이 영어를 가르쳐 줄 수도 있는데,, 왜 스스로 안된다고 가정을 하고 사실까,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본인의 의견을 존중한다. 
 
나이가 드는 것은 싫지만 내 꿈이 있다면, 나중에 아이들 가까이 살면서 손자 손녀를 봐주고 학원도 픽드랍 해주면서 내 여생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 딸과 며느리가 일을 하면 힘이 들 테니, 남편과 집 청소도 해주고 음식도 만들어 주고 주말에는 가족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은 또 아이들끼리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물론 설거지 담당은 나이고 음식 담당은 우리 남편이고 손자 손녀 학원비와 간식비는 모조리 우리가 내줘야지! 그렇게 되기 위해 지금부터 아이들에게 세뇌를 시키고 있다.


엄마 아빠가 아기들 봐줄 테니깐,
각각 4명씩 만 낳아 주면 안 될까??


진심으로 대가족으로 살고 싶다. 사진 한 컷에만 이쁜 모습을 담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인생 전체에 추억을 담아주고 그렇게 행복을 느끼며 세상을 살고 싶다.  

Unsplash의 Tyler N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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