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내 인생은 시트콤이 아닌가 싶다. 평범하고 반복적인 삶이 아닌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그 경험들은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윤활유가 되어 준다. 내가 경험에 대해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인지, 나에게 글을 쓰라고 이런 경험들이 생기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신기한 경험을 마쳤다.
재스퍼 호텔에서 아이들과 수영을 하고 난 뒤, 남편과 테라스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공기가 뿌옇고, 재가 공기 중에 흩날린다. 건너편 산 위에 있는 새들이 까악까악 울면서, 난리 난 상황이 펼쳐진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주차장에서 어떤 커플이 짐을 싸서 자에 싣는 것을 보았다. 그 후 다른 가족에게 무엇을 설명하는데, 그 가족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방으로 간다. 조금 후에 그 가족들도 짐을 싸서 차에 싣는다.
일행인가? 무슨 일이 생겼나?
지금 9시 반인데... 이 시간에 길도 안 보일 텐데..
어떻게 가려고 하지??
좀 무딘 성격의 우리 커플은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만 보고 있다가 혹시나 해서 Jasper Fire을 검색해 봤다. 그곳에서 지금 재스퍼 북쪽에 산불이 났으니, 혹시 모르니 차에 기름을 채우라는 글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을 주유소로 보냈다. 15분 후남편에게 전화가 왔는데, 지금 주유소에 차들이 너무 많이 서있다고 했다. 첫 번째 주유소에 갔더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 두 번째로 향했더니 그곳도 많더랜다. 또 다른 세 번째 주유소를 가니, 그곳 또한 많아서 결국에는 첫 번째 갔던 곳으로 향해서 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남편의 행동에 살짝 답답하긴 했지만, 잘했다고 기름 넣고 천천히 오라고 했다.
남편을 기다리는 중에, 더 많은 사람들이 짐을 싸서 떠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우리 짐도 싸놓고 남편이 오면 차에 실어서 만약의 상황을 준비하려고 했다.
그렇게 남편을 기다리는 사이에, 긴급 문자가 왔다.
모든 사람들은 지금 즉시 재스퍼에서 떠나가라고 했다. 5시간 안에 재스퍼에서 떠나야 한다며, BC 쪽 고속도로를 타고 가야 한다고 했다. 문자를 받은 뒤, 밖은 소란스러워졌다. 호텔방 문을 열어보니, 지나가던 사람이 우리에게 지금 불 때문에 떠나야 한다면서 얼른 방에서 나오라고 했다. 그 사이 남편이 도착하여 짐은 싣고 우리도 떠날 준비를 했다. 혹시나 벤프 쪽으로 갈 수 있나 생각하고 호텔 프런트에 가서 벤 프 쪽으로 갈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이 긴급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유지하는 젊은 친구가 BC 고속도로로만 가야 한다고 했다.
호텔 앞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행렬이 있었다. 우리가 지냈던 호텔이 Ride 가 필요 한 사람들이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으로 지정되었기에 다른 곳에서도 모인 것 같다.
지도를 열어서 길을 보니, BC 주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5시간 걸려 캠룹스로 간 뒤, 또다시 5시간을 이동하여 벤프로 이동해야 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한 뒤, 길을 나섰는데, 길에 차가 한가득이다.
3시간 동안 3km를 이동할 정도로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새벽 3시가 넘어 피신해야 한다는 5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무 곳도 갈 수 없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침착했다. 차가 밀려있다고 반대 차선으로 가지도 않고, 갓길로 가지도 않았다. 몇몇이 길을 걸어가서 앞의 상황을 보기도 했는데, 자욱한 연기를 맡으며 걸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럴 바에 호텔에서 자고 새벽에 출발할 걸 그랬다고 이야기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텔로 전화를 했더니, "This is mandatory, you should go to BC high way, don't return!"라고 다급하게 말을 하여 전화를 끊었다.
이대로 인생이 끝나는 건가?
내 인생을 돌아보니, 아까 호텔 수영장에서 가족끼리 웃으면서 잡기 놀이를 했던 것만 떠오르면서 눈물이 핑 돈다. 아이들을 잡으며 뽀뽀했던 그 순간이 떠오르면서 뒷좌석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우리 진짜 지금이 버킷리스트를 말할 수 있는 시간이네..
당신은 살면서 후회하는 것 있어?
움직이지 않는 차안에서, 남편에게 질문을 하면서 나도 함께 생각에 잠겼다. 삶에서 후회하는 것은 없었는데, 아이들과 그리고 남편과 행복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이렇게 끝나면, 삶에 대한 후회보다는 그리움이 남을 것 같다. 우리의 일상이 그리워지고 행복했던 순간만 기억이 나서 눈물이 났다. 정말 난 행복하게 살았었구나....
여기서 돌아가게 되면, 당신은 음식일 편하게 해..
더 이상 너를 푸쉬하지 않을게..
돈보다도 우리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가지자.
돈은 조금만 쓰면 되지.
이번 여행에서 식당에 방문하지 않고, 밥통과 에어프라이기를 들고 가서 열심히 밥을 해 먹었는데, 아이들도 먹고 싶은 거 편하게 먹어서 좋아했고, 우리 또한 돈도 많이 들지 않고 간편해서 좋았었다. 앞으로 이런 인생을 산다면, 조금 더 느리고 즐기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1km를 더 왔다. 오는 도중 몇몇의 차가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았고, 한없는 기다림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교차로에 경찰이 차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지금 힌턴 쪽으로 가는 길을 열었으니,
BC 주로 갈지, 힌턴으로 갈지 선택할 수 있어!
인생의 인연이란 참 신기한 것이다. 만약 남편이 주유소 3곳을 돌지 않았다면, 방금 뚫린 이 길을 가지 못하고 BC주로 갔을 것인데, 남편의 속터지는 행동 덕분에 더 좋은 일이 생겼다.
힌턴이면 우리가 에드먼튼에서 왔던 길이다. 10시간의 운전으로 벤프로 가는 것보다 우리의 선택은 당연히 힌턴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며 차를 돌려 힌턴 쪽으로 향했다.
제스퍼를 끼고, 위쪽 아래쪽 산불이 났는데, 벤프쪽보다 덜 심한 위쪽 길을 열었나 보다.
위 쪽으로 가니, 차들이 도로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후, 경찰차를 선두로 한 뒤, 산불이 난 지역을 천천히 숨죽이며 통과했다.
눈앞에서 산불이 난 광경을 지켜보며, 또다시 자연의 위대함과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존재를 실감한다. 다행히 비가 내려줘서 산불이 잦아지기를 기도했다.
한 시간 동안 달려 힌튼에 도착하여, 편의점에서 화장실도 다녀오고 커피도 한잔 사서 마시면서 살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망설여지는 새벽 4시, 결국 3시간에 거쳐 운전을 하여 집으로 돌아와 새벽 7시에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고, 아침 라면을 끓여 먹은 후 잠을 청했다. 벤프의 호텔은 연락을 해서 취소 했고, 모든 금액을 환불처리 해주었다.
이 모든 상황이 꿈만 같았다. 혹시나 걱정을 하고 있을 Bob 할아버지에게 연락을 해주었고, Judy 할머니도 걱정이 된다며 문자가 왔다. 그 후, 내가 제스퍼에 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주었다.
지금 북미는 많은 곳이 산불로 인해 난리다. 미국은 곳곳에 불이 많이 났고, 캐나다에는 큰불들이 앨버타, 사스케츄완, 매니토바까지 휩쓸고 있다. 하늘은 꾸물꾸물하고 매캐한 탄 냄새가 어렴풋이 난다.
자연의 이치로 보면 산불은 당연한 것이다. 늙어서 건조해지고 아무 역할도 못하는 나무들은 산불로 인해 숯으로 변해 다시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산성 토양을 알칼리성으로 만들어 토양 오염을 방지하고 여러 미생물들을 살 수 있게 해준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정말 신기하게 오래된 나무들은 탄 흔적이 있는데, 그 옆의 나무들은 푸른 나뭇잎을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만 탔는지 궁금할 정도다.
사람의 인생도 그러 한 것 같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고, 나이가 들면 후세에게 도움이 되도록 거름이 된 후 사라져야 한다. 죽음이 있어야 삶이 있고, 삶이 있어야 죽음이 있는 것인데, 인간의 탐욕으로 죽음을 지체하고 있기에 많은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자리 문제, 주택 문제 같은 여러 문제도 인간에게 산불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해결이 되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도 돈과 힘을 잡고 있어야 하여 스스로 외롭게 만드는 현실이 슬프다. 욕심을 조금 놓고, 지금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삶이 그리워지는 그 순간을 평생 기억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