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는 최고의 장난감은 실타래
어린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고 싶지만 정말 기억이 잘 안난다.
누구는 3살, 5살 때 기억들이 아련하다고 하는데, 나에게 어린시절의 기억은 많지 않다.
소시민적인 삶을 살던 내 생활의 밑바탕은 어린시절 경험이 무의식에 자리 잡았기에 생각이 안나는 어린시절의 기억을 몇개 끄집어 오려고 한다.
우리 집은 세탁소에 딸린 2~3평의 방한칸이었다. 그때는 대부분의 집에 연탄을 피웠던 시절이니깐, 연탄가스 중독될뻔한 경험은 웃음으로 날려 버리고. 난 그 좁은 방에서 5살까지 살았었다.
엄마의 미싱과 옷들이 함께 있던 방이 우리 생활의 전부였던 것 같다.
엄마의 회상으로 다른집에 놀러만 가면 그 집에서 안오려고 했다고 한다. 어린마음에 얼마나 큰집이 부러웠을까, 아니 큰집이 아니라 일반사람들의 거실있고 주방있고 방이 있는 집이 얼마나 멋져 보였을까?
내 장난감은 물론 부모님이 사주셨겠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장난감은 엄마의 미싱에 있던 실이였다.
빨간색, 주황색은 여자, 파란색 초록색은 남자.
실에 여러 색에 남녀 성별과 생김새를 상상하며 실끼리 고백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놀았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 내가 가장 재미있어하던 놀이가 실 놀이 아니였을까? 실타래 몇개로 마을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학교 학생들도 만들고 뽀뽀뽀 친구들도 만들었다.
아마 이때의 기억이 내 무의식에 자리 잡은 탓일까? 나는 물욕이 심하지 않다.
가방도 하나를 사면 5년동안 그 가방 하나만 매고 다니고 신발도 운동화 둘 (흰,검정) 구두하나 정도다 운동화가 다 닳아지면 그때서야 버리고 다른 운동화를 산다.
물론 부모님은 어린시절 우리에게 해줄 만큼 다 해주었다고 하지만 그건 부모님의 생각일 뿐이다.
고기반찬 없이 김치짱아치 종류 7가지 놓고 반찬이 많다고 하는 우리 엄마니깐,
반대의 기억으로 우리 세탁소 옆에는 슈퍼가 있었다.
그곳은 나에게 원더랜드같은 곳이였다. 언제나 가서 아무거나 손에 집어 오면 되는 곳,
부모님은 몇푼 안되는 돈이라 4살 아이가 들어가서 집어오는게 웃기기도하고 귀엽기도해서 많이 나무라시지 않았다. 어차피 돈을 지불하면 되니깐 슈퍼아주머니도 귀엽게만 보셨다. 이게 내 푼돈 지출의 시작이 되었을까?
장난감은 비싼 것이니 없고, 슈퍼는 푼돈이니 하루에도 몇번 드나든 기억, 이것이 내 어린시절 기억이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와 같이 내 소비정체성의 시작은 어린시절 무의식속에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