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어떤 모습이 아버지의 모습인지를 못보고 자란 탓일까, 아빠는 화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었다. 아니 아버지, 남편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엄마와 몇번의 투탁투탁이 오고간 후 어김없이 "쨍그랑" 소리가 난후에 싸움이 종료되고는 했다. 아마 어떻게 싸움을 해결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 싸움을 끝내고 싶은 최후의 알림이 "쨍그랑"이 아니였나 싶다.
엄마는 아빠가 본인의 삶을 망쳤다고 항상 나에게 말을 했었다. 힘들게 대학을 나왔는데 세탁소라는 천한 직업에 잡아 두었다는 식으로 아빠를 폄하 하였고 대학을 나온 자신의 우월함을 잃고 싶지 않았다.
또한 나를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긴 세월을 참고 또 참았다는 식으로 나에게 세뇌를 시켰다.
엄마의 푸념속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엄마의 삶에 피해자의 느낌으로 살아 가도록 시스템화 되고 있었다.
한번은 내 소풍 전날 크게 싸운일이 있다.
엄마는 내 소풍준비를 위해 사이다 한캔을 사와 냉장고에 넣어 놨고 아빠는 그것을 마셨다.
다음날 소풍을 준비하려는 중 엄마는 사이다가 없어진 것을 알아채고 아빠와 싸움을 하였다.
그 후 엄마의 감정 쓰레기는 어김없이 첫째 딸인 나에게로 향한다.
걷어 차인 고양이 효과라고 들어 봤나?
그 후에 나는 동생에게 짜증을 내지만 동생을 울린 죄로 나는 또 다시 혼이 난다.
우리집 감정의 최종 쓰레기 통은 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음료수를 넉넉하게 사 놓을 수 있었고 다시 음료수를 사러 갈 수도 있었고 다음날 아침에 학교에 가면서 살 수도 있었다. 아빠 또한 미안하다고 하고 다시 나가서 음료수를 사올 수 있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타협점이 없었다.
싸움이 시작되면 항상 현재가 아닌 과거의 감정까지 끌어들였고 매섭게 쏘붙이는 엄마에게 말싸움으로 지는 아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최종 수단은 "쨍그랑"이 아니였나 생각 된다.
가정 형편이 여유로웠으면 괜찮았을까? 엄마 말대로 아빠가 대학을 졸업했었으면 달랐을까? 세탁소를 하지 않고 의사 직업을 했었으면 달랐을까? (물론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우리 부모님은 항상 칼날이 서있는 상태 같았다.
엄마는 본인이 날개옷을 입었던 시절을 추억하며 의사가 자신에게 대쉬를 했다는 (확인되지 않는) 과거에 빠져 현재를 부정하며 살았다. 우리 남매는 언제 화낼지 모르는 아빠와 언제 큰소리 칠지 모르는 엄마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 이 때문에 지금은 다른사람의 기분을 잘 살피는지 모르겠다. (정확히는 다른이의 눈치를 많이 본다.) 다행히 매일 이런 상황은 아니였지만 한달에 한번이라고 해도 아이들은 이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다. 100번 좋은 일을 봐도 1번의 나쁜 일을 경험하면 기억에 남듯이 부모님의 싸움은 내 무의식을 지배했다.
내 경험을 오픈하는 이유는 당신의 경험 또한 오픈하고 싶어서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어린시절 부모님의 기억은 어떠했나? 만약 당신이 지금 사람들과 트러블이 잦거나 우울함을 느끼거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어린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보길 바란다.